『엔트로피』 - 제레미 리프킨(세종연구원)
2013.11.03. ~ 2013.11.05.
엔트로피란 우주 내 어떤 시스템에 존재하는 유용한 에너지가 무용한 형태로 바뀌는 정도를 재는 척도이다.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제1법칙), 엔트로피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제2법칙).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점점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 같은데, 사실 이 생각이 보편화되기 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1750년 어느 날 세계사의 새로운 개념에 대해 가르쳤던 자크 튀르고 교수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세계사에 새로운 개념을 부여했고, 최초로 ‘진보’라는 중요한 사상을 창시했다.
튀르고는 역사의 순환과 지속적인 쇠락을 거부했다. 그는 상당히 호전적인 어조로 이렇게 말한다. “역사는 일직선으로 진행하는 것이며, 각 단계는 앞선 단계보다 진보한 모습을 보여준다. 역사는 축적의 산물임과 동시에 진보하는 것이다.” 정체상태를 찬양한 그리스의 철학자들이나 중세 교회의 신학자들과는 달리, 튀르고는 끊임없는 변화와 움직임의 미덕을 역사에 도입했다. 물론 튀르고는 진보는 불규칙하고 가끔 벽에 부딪히기도 하며 심지어 퇴보하기까지 한다는 사실에 기꺼이 동의한다. 그러나 그는 역사가 이 지구상의 삶에서 완벽을 지향하는 총체적 진보를 보여준다는 확신을 결연히 고수했다.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발상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이미 이런 생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튀르고가 교수직에서 파면당하지도, 교회로부터 비난받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13세기 프랑스의 샤르트르에 대성당이 건립되던 시기와 1750년의 기억할 만한 강의 사이에 유럽 사람들의 마음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이 변화야말로 현대적 세계관의 모태이다. 이것이 성장하고 성숙하여 오늘날 우리가 물려받은 세계관이 되었다. - <엔트로피> 중에서
여기서 말하는 세계관이란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만큼 어릴 적부터 사람들의 마음속에 철저히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회의 구성원들은 자신의 행동방식이나 현실 인식 방법에 세계관이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제대로 의식하지 못한다. 이 세계관은 여러 사건들을 거쳐 서서히 바뀌어왔으며, 이 책의 1장에서는 지금까지의 세계관 변화에 대해 차례로 서술한다.
그리스인들과 역사의 다섯 단계 : 순환과 몰락
그리스 사람들은 세상이 신에 의해 창조되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완벽하지만 영원하지는 못하다고 생각했다. 창조된 순간부터 쇠락의 씨앗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역사는 황금시대에만 당초의 완벽한 질서를 유지하고, 은의 시대에서부터 역사의 전 과정에 걸쳐 쇠락의 과정을 밟는다. 결국 우주는 혼돈을 향해 가고, 신들은 다시 나타나 태초의 완벽한 상태로 회복시킨다. 역사란 질서에서 혼돈으로 움직여가는 반복이지, 완벽을 향한 발전이 아니었다.
성장은 결국 사람을 더 큰 가치와 질서로 이끄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이다. 역사가 최초의 완벽한 상태를 조금씩 갉아먹는 것을 의미한다면, 그리고 최초의 유한한 풍요를 조금씩 소진하는 것을 뜻한다면 이상적인 상태는 이러한 쇠락의 과정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스 사람들은 더욱 큰 변화와 발전을 더욱 심한 쇠락과 혼돈으로 해석했다. 따라서 그들의 목표는 변화로부터 최대한 보호된 세계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것이었다. - <엔트로피> 중에서
기독교적 세계관
중세 전반에 걸쳐 서유럽을 지배했던 기독교적 역사관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다음 생을 향해 가는 중간 과정으로 생각했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그리스적인 순환의 개념은 버렸지만 역사를 쇠락의 과정으로 인식 했다.
결국 중세 사람들은 신이 모든 사건 하나하나를 통제하는, 완벽하게 질서정연한 구조물로 세상을 파악했다. 기독교에서 신은 삶의 모든 부분에 관여한다. 어떤 일이 일어나거나 또는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의 뜻이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신이었지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적 목표도 없었고, 진보하려는 의지도 없었고 뭔가를 남기려는 열망도 없었다. - <엔트로피> 중에서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구성원들의 목표는 뭔가를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는 것이었다. 내가 세계문학을 읽을 때 가끔 느끼던 이질감이 있었는데, 바로 이 ‘구원을 얻는다’는 세계관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이제야 이해가 되는 것 같다. 그 당시의 세계관과 지금의 세계관은 당연히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현대적 세계관(기계론적 세계관)
이제 우리가 마주할 세계관이 현대적 세계관이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다. 이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진보’일 것이다. 우리는 프랜시스 베이컨, 르네 데카르트, 아이작 뉴턴 등 세 사람의 사상의 영향 아래 살고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주의자라는 확신에 입각해 애덤 스미스는 인간의 모든 욕구를 자신의 물리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물질적 추구에 종속시켰다. 진보는 물질적 풍요를 더욱 증대시키는 것이며, 이 물질적 풍요가 질서 있는 세계를 만들어낼 것이다. 과학과 기술은 이를 실천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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