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이 소설의 화자인 이강민은 마흔을 훌쩍 넘긴 중년의 남성이다. 그는 차를 운전하다 '크랴샤'라는 단어가 써진 트럭을 발견한다. 그는 왠지 그 단어에 끌리게 된다.

 

마흔 일곱이 되던 해 취미로 마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매일 새로운 마술을 연습하며 사람들에게 선보이곤 했다. 작은 마술쇼에서 그는 많은 것들을 사라지게 했고, 다시 나타나게 했으며, 어떤 것들은 찢었다가 다시 붙였다. 이 일들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마술은 이를 가능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술아카데미의 선생 장연창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세계적인 마술사 하미레즈의 오프닝과 전체 기획을 자신이 맡았고, 그 팀을 꾸리려 하는데 그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강민은 그 전화를 받고 가슴이 뛰었다. 진짜 마술사가 되는 일이고, 기껏 보조이겠지만 큰 무대에 오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연창은 마술쇼의 전체적인 구상을 하고 있었고 같은 팀의 마술사 3명은 그를 돕기만 하면 되었다. 이강민은 그 팀의 가장 어린 마술사인 다빈과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마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다 길거리에서 마술을 하는 '버스킹'을 하러 간다. 관객의 눈을 어지럽게 하는 재주가 있던 다빈은 두 시간의 버스킹 끝에 오만원을 벌었다. 그들은 그 돈으로 치킨과 맥주를 먹으며 늦게까지 술자리를 가진다.

 

많이 취한 다빈을 그의 동네로 바래다 준 강민은 동네의 모습이 다 보이는 공원에서 도시를 바라본다. 술에서 깬 다빈은 데이비드 카퍼필드가 자유의 여신상을 사라지게 했듯 자신은 도시를 한 번에 사라지게 하는 마술을 하고 싶다고 한다. 저기에서 사는 사람들은 엄청 행복할텐데 자신과 비교되기 때문이었다.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마술이 아니라 그냥 사라지는 마술.

 

다음날, 놀랍게도 장연창이 강민과 다빈에게 프로젝트를 맡겼는데, 건물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마술이었다. 현장 답사를 가서 그 운조빌딩을 사진으로 찍어보냈다. 그리고 그날 찍은 사진은 이틀 동안 직업 일 때문에 바빠 열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인 폐목재를 활용한 재활용 가구에 관한 일이었다. 다빈이 사진을 빨리 보내달라 재촉해서 사진과 함께 떠오른 아이디어와 자신이 본 건물 변형 퍼포먼스 동영상 링크를 보냈다. 반응이 좋아서 운조빌딩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에 그 기법을 쓰기로 한다.

 

마지막 리허설에 이강민은 운조빌딩으로 간다. 그곳은 흰 천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놀랍게도 운도빌딩이 있어야 할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건물을 미리 부숴놓은 다음 이미 건물이 있었던 것처럼 꾸며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마술을 기획했기 때문이었다.

 

이강민은 마술쇼를 텔레비전을 통해 보았다. 마술쇼는 성공리에 진행되었고, 특히 마지막 하이라이트의 건물이 사라지는 마술에서는 관객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그 해에는 오래된 다리 하나가 무너져 시민 두 명이 다쳤고, 여름엔 대규모 철거사업이 있었고, 가을엔 운조빌딩이 사라지는 마술이 있었고, 겨울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소멸된 것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크랴샤의 뜻은 한참 뒤에 알게 되었는데, 모든 걸 잘게 부수는 기계의 이름인 'Crucher'의 발음을 옮겨 적은 것이였다.

 

 

2. 분석

 

작은 마술쇼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사라지게 했고, 다시 나타나게 했으며, 어떤 것들은 찢었다가 다시 붙였다. 모두 불가능한 일이다. 소멸된 것들은 되살아날 수 없으며 찢어진 것들은 절대 다시 붙지 않는다는 걸 모두 안다. 관객들은 알면서도 매번 속아준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마술이 나를 사로잡았다.

 

마술은 마법이 아니다. 소멸된 것들을 되살릴 수 없는 것이 마술의 속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술은 눈속임을 통해 관객들에게 재미를 준다. 마술은 철저히 현실적이다.

 

 

"저는 저 도시가 사라지는 마술을 할 거에요."

"왜 사라지게 해?"

"어릴 때부터 맨날 여기서 놀았거든요. 여기서 저 불빛 보면서 무슨 생각했는 줄 알아요? 저 새끼들은 존나 행복할 텐데, 나 혼자 이러고 있구나. 씨발, 나는 맨날 얻어터지기만 하는데, 저 새끼들은 불 켜놓고 신나게 노는구나. 한꺼번에 불이 확 꺼지고 저 새끼들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그 때부터 마술사가 되고 싶었어요. 한순간에 스르륵, 도시가 연기처럼 날아가버리는 거에요. 마술은 여기 가로등 아래에서 할 거에요. 이 앵글 죽이죠? 여기서 제가 손바닥으로 도시를 가리고 하늘을 한 번 가리켰다가 다시 도시를 보면, 모두 확 사라지는 거에요. 죽이죠?"

"죽이네."

"아저씨는 사람 참 힘 빠지게 대답해요."

"그런가? 그런데 도시 사라지게 했다가 어떻게 다시 나타나게 할 건데?"

"그게 카퍼필드와 저의 차이죠. 제 마술에서 도시는 그냥 사라지는 거에요."

"불가능한 마술이네."

 

다빈에게 '저 도시'는 증오의 대상이다. 상대적으로 자신보다 훨씬 행복해보이는 그곳을 보며 '저 도시가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다빈이 바라는 것은 마술이 아니라 붕괴이다. 그것은 강민의 말대로 '불가능한 마술'이다.

 

다빈이 데이비드 카터필드와 자신의 차이점을 말한 것도 이 차이이다. 그는 마술을 하는 사람이고, 다빈은 붕괴를 꿈꾸는 사람이다. 불가능을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일 대신 불가능한 일을 꿈꾼다.

 

 

폐목재를 다시 쓸 만한 재목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접착제와 불필요한 성분 등을 걷어내는 복잡한 공정이 필요하고, 그 때문에 원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 일반 가구보다 비싼 돈을 지불하는 대신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은 시간이다. 재활용 가구를 통해 나무가 지내온 시간을 살 수 있고, 지구가 좀더 오래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강민이 하는 일은 다빈의 꿈과 반대되는 속성의 일이다. 그는 새 가구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잘라내는 대신 기존 가구를 쓸만한 재목으로 만들어 재생산한다. 그에게 마술은 새로운 것으로 바꾸는 것이다. 영원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나타나는 것이다.

 

 

어째서 사건들은 번호표를 받아 대기하지 않고 한꺼번에 빚쟁이처럼 몰려드는 것일까. 어째서 모든 중요한 일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일까? 나는 그 이유를 생각해보곤 했다. 왜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내가 치과에 가서 비싼 치료비를 내게 되는 것일까. 왜 하필 처가에서 부도를 맞은 달에 가게 주인은 세를 올려 달라는 전화를 하는 것일까. 동시에 일어난 수많은 일들에 시달리느라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질 때면 하느님께서 고난의 묶음 판매에 재미를 붙이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낱개로 고난을 던져줄 때보다 묶음으로 고난을 던져줄 때 고난의 효과가 커진다. 낱개의 고난을 여러 번 겪는 것보다 원 플러스 원 고난을 한번 겪고 나면 저절로 하느님을 찾게 되니까.

 

강민이 생각하는 고난은 마치 묶음 판매처럼 한꺼번에 다가오는 무엇이다. 그리고 그 고난은 무언가의 부재로부터 다가온다. 돈의 부재, 건강의 부재, 사람의 부재 말이다. 이 부재는 쉽게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영원히 부재한 채' 남기도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강민에게 어쩌면 마술은 그 부재를 잊게하는 도피처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마술의 세계에서는 없어졌다가도 어느 순간 짠! 하고 등장하곤 하니까.

 

 

그 자리에 있던 건물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건물을 없앤 다음 있는 것처럼 꾸몄다가 영원히 사라지게 하는 마술이 펼쳐질 것이었다. 그것은 마술일까. 마술이라고 해야 할까. 마술이다. 분명히 마술이다. 마술이지만, 나는 그걸 마술이라고 부를 수가 없었다. 소멸된 것들은 되살아날 수 없으며 찢어진 것들은 절대 다시 붙일 수 없다.

 

강민은 이성적으로 그것이 마술임을 인정하나 가슴으론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운조빌딩의 외벽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빌딩을 허문다는 것은, 다시 그 외벽을 볼 수 없다는 것을 뜻했다.

 

 

크랴샤. 나는 그 시절을 회상할 때 단 하나의 단어로 모든걸 되살린다. 크랴샤. 그 단어의 의미는 한참 후에 알았다. 영어 단어 'Crucher'의 발음을 옮겨 적은 것이였고, 모든걸 잘게 부수는 기계의 이름이었다.

 

나도 가끔 환각을 본다. 쉰이 넘은 다음 급격히 나빠진 시력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있었다가 없었던 것들이 보일 때가 있다. 어머니가 문득 나타날 때도 있다. 말을 걸 뻔한 적도 있다. 어머니, 어쩐 일이세요? 말이 목에 걸렸다가 다시 들어간다. 운전하다가 문득 강을 쳐다보는데 사라진 다리가 눈에 나타나기도 한다. 운조빌딩을 지나갈 때도 그랬다. 그 자리에는 이미 거대한 쇼핑몰이 들어섰는데, 나는 가끔 운조빌딩이 보인다. 바깥으로 쑥 튀어나온 책상 같던 운조빌딩이 나타난다. 고개를 젓고 눈을 깜빡여본다. 환각은 금방 사라진다. 동그란 가로등 불빛이 수십 개 눈 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눈이 침침하다. 도시는 절대 낡지 않는다. 나만 낡아갈 뿐이다.

 

가끔 환각을 본다고 한다. 이 환각은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있었던 것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다. 그가 마술을 동경했던 까닭은 부재했다가 다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의 마술은 운조빌딩 마술과 함께 붕괴되었다. 그가 그것을 마술이라고 보았던 이유는 사람들을 눈속임을 통해 즐겁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그것을 마술이라 부를 수 없었다. 그것은 부재했다가, 다시 나타나는 것이 아니였기 때문이다. 영원히, 부재하게 되는 것이었다.

 

마술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 하는 일이다. 그가 생각한 불가능한 일들 - 죽은 어머니가 돌아온다던지 - 은 마술을 통해 구현될 수 있다. 분명히 불타올랐던 카드가 다시 나타나기도 하고, 없었던 비둘기가 생겨나기도 한다. 하지만 운조빌딩 마술과 함께 그 마술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여전히 마술을 동경한다. 없었던 다리가 눈에 나타나고, 책상 같던 운조빌딩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세상은 운조빌딩이 사라지는 마술에 열광하기에, 도시는 낡지 않고 자신이 낡아갈 뿐이라고 스스로 조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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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평범한 도시에서 가로 세로 십 미터 크기의 대형 유리가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난다. 대형 유리는 길을 지나던 다섯 명의 머리 위로 떨어져 큰 인명 피해를 입힌다. 이 이후 서울에서는 대형 유리가 조용히 건물에서 떨어져 나와 사고가 일어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재해방지대책본부의 도심팀장 이윤찬은 정남중 형사와 함께 이 일을 맡게 된다. 정남중은 이 사건들이 마치 '대형 유리의 자살'같다고 말한다. 말이 되는 소리냐고 이윤찬은 뭐라 하지만, 실로 그것은 유리의 자살이라고 밖에 설명되지 않을만큼 미스테리한 일이였다.

 

이윤찬은 하성우라는 유리 건축의 일인자를 만난다. 하지만 그는 비협조적 태도를 보이며 매우 불쾌해한다. 그리고 또 다시 터지는 유리 낙하 사고.

 

떨어진 유리 성분검사의 결과를 알아보자, 알루미노코바륨이 유리 속에서 검출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성분은 특정 물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범인은 이 물질을 알고 있을 것이라 추측하는 이윤찬과 정남중.

 

한편 이 사건의 범인인 고은진은 이 년 전 알루미노코바륨과 유리의 상관관계를 알게 되었다. 일 년간의 연구 끝에 그녀는 그 물질이 어떤 상황에서는 유리를 일순간에 수축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일 년 전, 친구 정지현이 죽었던 때를 기억한다. 매력적이였던 그녀는 고은진과 절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고은진이 알루미노코바륨의 비밀을 알게 되어 일주일만에 정지현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혀 연관없는 두 사건이 하나로 연관되어 있다고 느낀 고은진. 그녀는 정지현의 남자친구가 뒤에서 민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그녀에게 환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지현이 창 밖에서 수없이 떨어지는 모습을 말이다. 그녀가 바닥으로 떨어지면 유리처럼 깨졌다.

 

그녀는 유리를 수축시키는 총을 들고있다가 이윤찬과 정남중에게 체포되었다. 이윤찬은 그녀에게 심문을 하지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알루미노코바륨과 초음파의 관계는 일급 비밀로 부친다. 누군가 알게 된다면 엄청난 수의 창문이 테러 대상으로 변할 것이므로.

 

그로부터 한 달 뒤, 장마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유리가 다시 한 번 추락했다. 사건보고를 받은 이윤찬은 고은진과의 공범이 있다고 본다. 비가 내리는 날 택시를 타고 있던 이윤찬. 그는 어쩌면 공범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생각한다. 창문을 박살내는 건 사람이 아니라 어떤 소리가 아닐까. 택시의 창문을 열고 흐릿한 빌딩들을 쳐다보는 그는, 시트가 젖는다 말하는 택시기사의 말을 듣고 창문을 닫는다. 닫자마자, 먹을 것을 찾아 몰려드는 생물체처럼 빗방울이 창문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2. 분석

 

대형 유리는 길을 지나던 다섯 명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그 중 세 명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한 명은 대형 유리의 모서리가 눈을 관통한 후 뒷골로 튀어나왔고, 한 명은 커다란 유리 파편이 몸을 두 동강 냈다. 나머지 한 명은 온몸에 수천 개의 유리 파편이 박혀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 유리의 추락 지점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두 명은 살갗 여기저기 유리 파편이 박혔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서울시 광찬구 미온동에서 벌어진 이 사고는 첫번째 유리 사고로 기록됐다.

 

갑작스럽게, 별다른 설명도 없이 대형 유리 추락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 사고는 '첫번째' 유리 사고로 기록되었다 한다. 작가는 이 유리 사고들을 이 소설의 메인 디쉬로 삼을 것이다.

 

 

"모든 정황을 종합해봤을 때 유리의 자살로 마무리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 벽에 붙어 있다가 너무 힘들어서 아래로 뛰어내린 거죠. 그늘이 없어서 너무 힘들어요. 그러면서, 사무실 안녕, 하면서 말이에요. 하하하."

 

유리 사고와 관련된 일을 맡게 된 정남중 형사의 말이다. 그는 이 사건을 '인명피해'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 장난삼아 한 말이지만,무생물인 유리를 생명처럼 인식하여 유리의 자살 사건으로 바라본다. '유리의 추락사'라고 보는 이 시각은, 소설의 전반적인 주제를 조율한다. 이후 등장하는 정지현의 자살사건처럼 말이다.

 

 

정지현이 죽은 다음 날부터 고은진에게 환각이 보였다. 창 밖을 멍하니 보고 있을 때면 누군가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게 느껴졌다.

 

한 달이 지나자 고은진은 환각을 즐기기 시작했다. 정지현이 떨어지는 모습을 즐길 뿐 아니라 환각을 키우기도 했다. 정지현은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유리처럼 깨졌다. 눈과 코와 살갗과 손톱과 젖꼭지가 부서진 다음 유리 파편처럼 사방으로 떨어졌다. 피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고 몸 전체가 작은 알맹이가 되어 튀었다. 고은진은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나중에는 직접 환각을 만들었다. 원하기만 하면 정지현이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져내렸고, 바닥에 떨어지면서 유리처럼 깨졌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는 고은진에게만 들렸다. 높고 신경질적인 파열음이었다. 상상속의 소리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선명했다. 고은진은 그 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유리를 바닥으로 떨어트려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유리와 함께 사람들이 떨어져 작은 알갱이로 산산조각나는 장면과 소리를, 고은진은 자주 생각했다.

 

고은진에게 대형 유리는 정지현과 등가 교환한 그 무엇이었다. 유리는 정지현이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닥으로 떨어진다. 유리는 곧 생명이 되고 바닥 위에 사는 사람들은 무생물이 된다. 이를테면, 유리 조각 정도로 치부되는 것이다. 무고려의 대상이다. 상상 속의 소리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선명했을 때에는, 환각 속에서 고은진이 초음파 총을 유리를 향해 쐈을 때였을 것이다. 진실과 허상은 고은진에게 옅은 층으로 구분된다.

 

정남중 형사는 옳게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옳은 시선이 아니였을 수도 있다. 고은진은 정지현이 죽은 이유가 그녀의 남친이 뒤에서 밀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은진은 그녀의 남자친구처럼 유리의 등을 미는 행위를 했을 뿐이다. 어찌보면 정지현을 밀었다고도 볼 수 있다.

 

시선은 모호하다. 유리의 자살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유리의 타살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지 말이다. 정지현이 죽은 사유를 잘 모르는 것처럼, 유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찌보면, 유리를 인격으로 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시선이 발생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윤찬은 버튼을 눌러 택시 창문을 닫았다. 창을 닫자마자, 먹을 것을 찾아 몰려드는 생물체처럼 빗방울이 창문으로 달려들었다.

 

빗방울은 초음파를 증폭시켜 유리 사고가 더 잘 나게 하는 매개체라고 앞에서 드러난 바 있다. 빗방울 역시 생명체처럼 묘사되고 사람들은 생명이 없는 존재처럼 드러난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도시는 사람들의 도시가 아니라 '유리의 도시'이다. 살아 숨쉬는 유리의 도시인 것이다. 알루미노코바륨이란 매개체로 그들의 추락사 이야기가 된 것이다. 곧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정지현의 분신들이라 할 수 있는 유리라는 속성이다. 조용히 추락하여 아름답게 산산조각나는 유리의 이야기, 그들의 추락은 결코 범인(凡人)들의 그것처럼 추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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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잘못이랄지, 간혹 하급 관리의 가정에 예쁘고 귀여운 여자 아이가 태어나는 일이 있다. 그녀는 그런 고운 처녀였다. 지참금도 없고 유산이 굴러들어올 만한 데도 없으며, 행세깨나 하는 돈 많은 남자를 만나 귀여움을 받으며 아내로 맞아질 그런 연줄도 없었다. 결국 문교부 근무의 한 하급 관리가 청혼하는 데로 결혼해 버리고 말았다.

 

온갖 좋은 것, 값진 것 때문에 자기가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만큼 그녀는 매일 구차스런 살림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초라한 집, 얼룩진 벽, 부서져 가는 의자, 누덕누덕 기운 빨랫줄에 널린 빨래, 모두가 보기 싫고 괴로움의 씨였다. 같은 계급의 딴 여자라면 그다지 상심치 않을 그런 모든 것이 그녀를 괴롭히고 부아를 돋구었다.

 

주인공 로아젤 부인은 아리따운 아가씨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녀의 삶은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그녀는 나들이옷도 없으려니와 장신구도 없고 뭣 하나 갖고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그런 것만이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런 것 때문에 자기는 태어났다고 그녀는 자각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것,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 사람들의 화제의 대상이 되는 것, 이것이 그녀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그녀의 외모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이다. 아리따운 얼굴에 걸맞는 나들이옷과 장신구가 그녀의 곁에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런 것 때문에 자기가 태어났다고 자각한다. 고통을 스스로 받는 겪이다.

 

 

"이것봐, 이게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야."

아내는 바삐 봉투를 뜯고는 인쇄한 카드를 꺼내었다. 이와 같이 써 있었다.

'문교장관 및 조르쥬 랭뽀로 부인은 로와젤 씨와 동부인을 오는 1월 8일 월요일 밤, 관저에 오십사 초대합니다.'

그러나 남편의 기대처럼 기쁜 마음으로 어쩔줄 몰라 하기는커녕, 아내는 분한 듯이 식탁 위에 초대장을 내던지면서 중얼댔다.

"이걸 어떡하라는 거죠?"

 

"아무 것도 아녜요. 다만 제겐 나들이옷이 없어요. 그러니까 축하하는 모임에는 가질 못해요. 나보다도 옷을 많이 가진 부인이 있는 동료가 계시다면, 어느 분에게든지 초대장을 드리세요."

 

그녀에게는 예쁜 나들이옷과 장신구가 없다. 때문에 초대장은 그녀에게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누추한 복장으로 파티에 참석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보 마칠드, 얼마쯤이나 하는 거야? 그런데 입고 나가서 부끄럽지 않고 딴 때도 입을만한, 어딘가 시원하고 수수한 것으로 말이야?"

그녀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여러 가지의 속셈을 하고 또 조금밖에 벌지 못하는 하급 관리인 남편이 깜짝 놀래어 대뜸 거절의 비명을 지르지 않을 한도 내에서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이 얼마나 될까, 하며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파티에 갈 생각이 없고(형편만 아니라면 무척이나 가고 싶지만) 남편의 생각을 관철시키려 한다.

 

 

"정확히는 나도 말할 수 없지만 4백 프랑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이 생각돼요."

남편은 약간 창백한 얼굴을 했다. 바로 그만한 액수의 돈을 남겨 두었던 것이다.

 

남편은 그녀를 위해 400프랑을 준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해하는 그녀. 그녀에게는 장신구가 없기 때문이다.

 

 

"장신구랄 게 하나라도 있어야죠. 보석 한 개 없어요. 몸에 붙일 것이 하나도 없다니, 궁색해 보이겠죠. 그 날 밤 모임엔 숫제 안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당신도 바보군! 당신 친구 훠레스체 부인을 찾아가서 장신구 좀 빌려 달라고 부탁해 보면 되지 않아. 퍽 친한 사이니까 그쯤은 빌려 줄거야."

아내는 환호성을 올렸다.

"참, 그래요. 어쩜 생각도 못했어요."

 

아내의 고민이 단박에 해결되는 순간이다. 그녀는 퍽 파티에 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까만 비단으로 싸인 상자 속에 찬연한 다이아 목걸이였다. 그녀의 가슴은 억제할 수 없는 욕망 때문에 몹시 울렁이였다. 그것을 집으며 그녀의 손은 떨렸다. 목덜미가 덮이는 옷이었지만 그래도그 목걸이를 달아 보고 거울 속의 제 모습을 보면서 도취되었다.

그리고 주저하며, 불안에 목메인 소리로 물었다.

"이거 빌려 줄 수 있어? 이것 하나면 좋겠는데."

"그럼, 그럼, 괜찮아."

 

다이아 목걸이는 그녀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불안은 복선이였을까. 불안은 곧 현실화된다.

 

 

남자란 남자는 모두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그녀의 이름도 소개 받기를 원했다. 정부의 높은 사람들이 모두 그녀와 함께 왈츠를 추고 싶어했다. 대신도 그녀의 존재에 주목했다.

 

그녀는 취한 듯한 기분으로 정신없이 춤을 추었다. 쾌락에 취한 것이었지만 딴 것은 아무 것도 생각지 않았다. 그녀 미모의 승리, 이 밤 성공의 영광, 이 모든 치사와 찬미, 각성된 욕망, 여자의 가슴에 더할 나위 없는 달콤한 승리, 그러한 것에서 생기는 일종의 행복의 구름, 그 속에서 일체를 잊었다.

 

축하회 날 그녀는 자신이 생각한 어느 이상에 가까워진다. 새로 입은 옷과 목걸이는 그녀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과 같았다.

 

 

그녀는 어깨를 감싼 옷을 벗어 던지고는 거울 앞에 서서 다시 한번 자기의 모습을 영광 속에서 바라보려했다. 돌연 그녀는 앗, 하고 소리쳤다. 목걸이가 없어진 게 아닌가.

 

영광의 순간을 돌이켜보려는 찰나, 목걸이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불안이 현실화되는 순간.

 

 

파레 로와이 야르의 어느 상점에서 두 사람은 찾고 있는 다이아의 목걸이와 똑같은 다이아를 찾아냈다. 4만 프랑이었다. 3만 6천 프랑까지는 에누리해 준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가정에게, 3만 6천 프랑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이었다. 그들은 반생을 바쳐도 갚을 힘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이 돈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꾸어야 했다.

 

 

십 년이 지나서야 두 사람은 한 푼 남기지 않고 일체를 갚았다. 고리대금의 터무니 없는 이자, 쌓이고 쌓인 이자의 일체를 지불한 것이었다.

 

10년 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개고생'해서 모든 돈을 갚았다. 작은 목걸이 하나 때문에 10년을 지불한 셈이다. 이 모습은 빈부격차와 그 빈부격차를 가속화하는 틀인 고리대금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로와젤 부인이 지금은 할머니로 보였다. 그렇지만 이따금 남편이 직장에 나가고 없는 동안 창가에 앉아서 그 옛날 야회의 일, 자기가 그렇게나 아름다웠고 그렇게도 대우를 받아 여왕처럼 행세했던 무도회의 일로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다.

 

그 목걸이를 잃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나을까? 그 누가 알랴! 인생이란 참으로 기묘한 것, 참으로 변하기 쉬운 것이다. 사람 하나를 파멸하고 구원하는 데 어쩌면 그렇게 작은 것 하나로 충분할까!

 

작가의 '평'이다. 작가가 직접 목소리를 낸 것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평은 곧 주제이기도 하다. 사람 하나를 파멸하고 구원하는 데는 크기에 구애받지 않는다.

 

 

"뭐! 마칠드! 많이 변했구나!"

"그래, 변했어. 무척 고생을 했단다. 그 전에 너를 만나고부터야. 그것도 너 때문이었어!"

"나 때문에?...... 어쩜, 왜?"

"너 기억 나니, 그 다이아의 목걸이 말이야. 관저의 야회에 가는 데 내게 빌려준 거?"

 

마칠드는 자신이 10년 간 폭삭 늙고 고생한 이유가 훠레스체 부인이 빌려준 다이아 목걸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것 대신 딴 다이아 목걸이를 샀단 말이지?"

"응, 그래. 너 몰랐었구나. 하긴 똑같은 목걸이었으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자랑스러운 듯 순진한 웃음을 띠었다. 훠레스체 부인은 숨이 탁 막혀 친구의 양 손을 잡았다.

"어쩜! 어떻하면 좋아, 마칠드! 내껀 가짜였어, 기껏해야 5백프랑 밖에 안 된 물건인데......."

 

이런, 결말에서 목걸이가 가짜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결국 마칠드가 고생한 이유는 목걸이 때문이 아니였다. 그녀의 성격 때문이었다. 그녀의 허영심이 적었더라면 훠레스체 부인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어떻게 해야할 지 물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파티에 가기 위해서 상당한 준비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아름다운 외모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던 이유는 외모가 곧 허영심으로 발전했기 때문이었고, 그 허영심이 삶을 망쳐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러니컬한 비극은 곧 성격의 비극이라고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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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수


주유소에선 시간당 천오백원을, 편의점에선 천원을 받았으므로 나는 늘 불만이 가득했다. 그게 그러니까, 시작 때완 달리 불만이 생기는 것이다. 편의점의 사장은 이러면서 세상을 배운다 - 라고 말했지만, 이천원씩 받고 배우면 어디가 덧나나? 뭐야, 그럼 당신 자식에겐 왜 팍팍 주는데?를 떠나서 - 못해도 이천원 정도의 일은 하고 있다고 나는 늘 생각했다. 글쎄 천원이라니. 덥기만 덥고, 짜디짠 지구.


나는 카프리썬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냈다. 제 돈으로 사는 거에요. 웃으며 말은 했지만 알고나 드세요, 제 인생의 이십오 분이랍니다. 시계를 쳐다보며 나는 생각했다. 지금 일하는 덴 사장이 꼴통이라서 말야... 오늘도 여자애 허벅질 만졌지 뭐냐... 나 참... 그래도 되는 거냐? 되고 말고를 떠나, 허벅질 만진다면 시간당 만원을 줘야 되는 게 아닌가, 나는 생각했다. 만지는 게 나쁜 게 아니다. 그리고 고작, 천원을 주는 게 나쁜 짓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주인공의 산수란 이렇다. 그는 시간당 천원을 받든 천오백원을 받든 간에 그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위치이다. 어떻게 보면 수동적 존재이다. 여자애 허벅지를 만진 사장에 대한 평에도 이 산수가 적용된다. 도덕적 관념을 제하고 일의 난이도에 따라 시급이 매겨진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 남들의 말이 나누어지지 않고 나열된다. 때문에 문장이 자유롭게 구사된다. 박민규 특유의 문체에 힘입어 이 효과는 배가된다.

 

 

삼천원이요? 앞뒤 잴 것도 없이, 시간당 삼천원이란 말에 귀가 확 뚫리는 기분이었다. 내 주변에 그런 고부가가치 산업이 존재하고 있었다니. 제의를 받은 사실만으로도, 갑자기 확, 고도산업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한 느낌이었다. 좋구말구요. 비하자면 수성과 금성과 지구를 지나, 비로소 화성에 다다른 태양광선이 바로 나같은 기분일까? 있으나마나에 받으나마나, 지구여 안녕.

 

그런 이유로, 나는 푸시맨이 되었다.

 

 

그의 지구는 1000원에서 1500원이 한 시간의 노동의 대가로 주어지는 곳이었다. 그런 그에게 시급 3000원 제의는 화성과 다름없는 파격제의였다.

 

 

미안하구나.

 

아버진 그렇게 얘기했다. 또 그소리. 내가 일만 한다 하면 늘 같은 소리였다. 처음엔 들을 만했는데, 결국 들으나마나가 돼버린 지 오래다. 나이 마흔다섯에 시간당 삼천오백원, 즉 그것이 아버지의 산수였다.

 

 

이쯤되면 주인공이 말하는 산수가 시급과 비슷한 개념임을 알 수 있다. 주인공에게 카프리썬은 25분이듯, 산수는 물건과 시간의 환율이다.

 

 

넉넉한 환경은 아니어도, 제법 메탈리카 같은 걸 듣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세상은 뭔가 ESP 플라잉브이(메탈리카가 사용한 기타의 모델명)와 같은 게 아닐까, 막연한 생각을 나는 했었다. 했는데, 해서 문을 열고 들어서자 꼬박꼬박 도시락만 먹어온 얼굴의 아버지가 가냘픈 표정으로 사무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 저 왔어요.

 

원래 좀 노는 편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날 이후 나는 조용한 소년이 되어버렸다. 뭐랄까, 그때는 몰랐지만 그 순간 마음속에 <나의 산수>와 같은 게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가냘픈 표정의 아버지처럼 아들도 조용한 소년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의 마음속에 <나의 산수> 같은 게 생겼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세상은 ESP 플라잉브이보다는 조촐한 도시락쪽이 더 가까웠다.

 

주인공은 그의 산수가 생겼다는 사실을 꽤나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어울리던 친구들이 안쓰럽단 투로 말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결국 이들도, 같은 산수를 할 수밖에 없단 사실을.

 

인간에겐 누구나 자신만의 산수가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것을 발견하게 마련이다. 물론 세상엔 수학 정도가 필요한 인생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삶은 산수에서 끝장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학 같은 학문에 매진하는 삶을 살기 보다는 수학의 잔재인 돈에 치여서 살기 마련이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 여러분들은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주셔야겠지만, 그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승객들은 모두 전철을 타야하고, 전철엔 이미 탈 자리가 없다. 타지 않으면, 늦는다. 신체의 안전선은 이곳이지만, 삶의 안전선은 전철 속이다.

 

정신 차려. 열차가 출발하자 코치 형이 다가와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네. 심호흡을 크게 했지만 다리가 떨리긴 마찬가지였다. 저 사람들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 화물이나, 뭐 그런 걸로 생각하란 말이야.

 

 

마치 카프리썬이 그의 25분으로 환전된 것처럼, 푸시맨은 사람을 화물처럼 여겨야 했다. 전철은 신체의 안전과 삶의 안전을 등가교환하는 산수가 통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전철 밖에서 '사람'이었던 이들은 안전선을 넘어서면서 화물이 된다. 자신의 모습을 남은 공간에 맞추어 구겨가면서 어디론가 이동해야 한다. 삶의 안전을 위해서다.

 

 

어쩌면 피라미드의 건설 비결도 <억울함>이었는지 모른다. 지금 관두면 너무 억울해. 아마도 노예들의 산수란, 보다 그런 것이었겠지.

 

 

푸시맨 일을 하면서 노예와 자신을 동일시 여기는 주인공의 모습.

 

 

파아, 하아. 그리고 여전히 열차가 들어오고,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압력에 의해 튕겨나왔는데, 그런가 했는데

 

아버지였다.

 

파아, 하아. 어색한 표정으로 아버지는 어색해진 넥타이를 고쳐매고 서 계셨다. 그리고 잠깐, 넥타이를 맬 만큼의 짧은 시간이 그러나 절대 풀리지 않을 매듭으로, 우리 둘 사이를 엮으며 지나갔다.

 

그러나 눈을 못 마주치는 우리의 결계를 넘어, 또 다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쳇바퀴를 돌듯, 지구가 자전하듯 일상은 상습적으로 돌아온다. 삶의 안전을 위해서 우리는 그 거대한 쳇바퀴 - 전철로 들어가야만 한다.

 

 

세상은 하나의 열차다. 한 량의 정원은 180명, 그러나 실은 400명이 타야만 한다.

 

 

우리들의 산수가 초라해보이는 이유이다. 정원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한 열차를 타야하는, 그러니까 수요와 공급이 전혀 균등하지 않은 탓에, 우리의 삶은 휘청거린다.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신체를 전철 안에 조금 구겨넣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때로 새벽의 전철에 지친 몸을 실으면, 그래서 나는 저 어둠 속의 누군가에게 몸을 떠밀리는 기분이었다. 밀지마, 그만 밀라니까. 왜 세상은 온통 푸시인가. 왜 세상엔 <푸시맨>만 있고 <풀맨>이 없는 것인가. 그리고 왜, 이 열차는

 

삶은, 세상은, 언제나 흔들리는가.

 

 

열차는 곧 삶이고 세상이다.

 

 

여전히 구름은 흘러가고 지구는 돌고,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는데 건너편 플랫폼의 지붕 부근에 떠 있는 이상한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것은 설마

 

기린이 아닌가.  그것은 정말 한 마리의 기린이였다. 기린은 단정한 차림새의 양복을 입고, 플랫폼의 이곳저곳을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본드를 했더니 환각이 보였다던 코치처럼, 주인공 역시 아버지와 기린의 모습을 착각한다. 과연 그가 본 것은 환각이었을까? 만약 환각이었다면 그가 복용한 환각제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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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서관의 정문 앞에는 어떻게 된 셈인지 닭장이 있었고, 닭장 안에서는 다섯 마리의 닭들이 좀 늦은 아침인지 좀 이른 아침인지를 먹고 있었다.

 

이 문장에서 사실만 가지고 문장을 재구성해 보자면 이렇다.

 

도서관의 정문 앞에는 ①닭장이 있었고, 닭장 안에서는 다섯 마리의 닭들이 ②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① : 닭장이라는 명사 앞에 ‘어떻게 된 셈인지’라는 수식 어구를 첨가해서 화자의 견해를 표하고 있다.② : ①과 달리 명사 자체를 바꾸었다. ‘좀 늦은 아침인지 좀 이른 점심인지를’이란 표현을 통해서 현재 시각이 11시 경이라는 사실을 역시 화자의 견해로 전환하였다.

 

이 같은 표현을 통해서 이 소설이 1인칭 시점임을 말하고 있다. 1인칭 시점의 소설을 쓸 경우에는 명사를 수식하는 부분에 화자의 견해 및 생각을 표현하거나, 명사 자체를 주관적 언어로 바꾸어 표현해야 할 듯싶다.

 

기분 좋은 날씨여서 나는 도서관으로 들어서기 전에 닭장 옆에 있는, 도로 포장에 쓰이는 돌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우기로 했다. 담배를 피우면서 줄곧 닭들이 모이를 먹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밑줄 친 부분을 제외한 부분은 작가의 견해가 표현되지 않았다. 빨간 글씨로 표시한 부분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도 '○○는 담배를 한 대 피우기로 했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이후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단서들을 통해, 이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는 부분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담배를 다 피웠을 때, 내 안의 무엇인가가 확실히 변해 있었다. 그러나 왜인지는 알 수 없는 채, 다섯 마리의 닭과 담배 한 개비만큼의 거리를 두게 된 새로운 나는, 스스로에게 두 가지의 의문을 던졌다.

 

먼저 한 가지는, 내가 최초로 중국인을 만난 정확한 날짜 따위에 누가 흥미를 가질까 하는 거였고, 다른 한 가지는 볕이 따스하게 드는 도서실의 책상에 놓인 낡은 신문 연감과 나 사이에, 더 이상 서로 나눠 가질 그 무엇이 존재한단 말인가 하는 거였다.

 

'담배를 다 피웠다.'로 끝날 문장을 화자의 생각 서술을 통해 길게 늘여뜨리고 있다. 나는 '확실히' 변해 있으나 그것이 왜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새로운' 나가 된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화자가 설명하듯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였다.'에 대한 서술이다. 하지만 이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서술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러므로 내가 국민학교 시절 [전후 민주주의의 저 우스꽝스럽고도 서글픈 6년 간의 석양의 나날들]을 통해서 제법 정확하게 기억해 낼 수 있는 사건이라고는 단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이 중국인 이야기고, 또 하나는 어느 여름 방학 오후에 있었던 야구 시합 이야기다.

 

여기서 두 가지 일화를 설명하려 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일화는 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들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문장들과도 제법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게 함으로써 일화를 설명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끔 한다.

 

 

2.

 

나는 아무나 붙잡고, 중국인 국민학교에 대해 아느냐고 묻고 다녔다. 누구 한 사람, 무엇 하나도 알지 못했다. 단지 아는 것이라고는, 그 중국인 국민학교가 우리 학군으로부터 전철로 30분이나 되는 거리에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당시의 나는 혼자서 전철을 타고 어딘가로 갈 수 있는 타입의 아이가 아니였기 때문에, 사실상 나에게 그곳은 '세상의 끝'과 같았다.

 

세상의 끝에 있는 국민학교.

 

어린 학생의 심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세상의 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문단을 바꿔 씀으로써 이를 더욱 극적으로 드러냈다. 아이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혀 중국인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나는 이제껏 중국인을 만나 본 일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상상 속의 중국인과 처음 본 중국인인 감독관 선생님의 괴리감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건 전혀 중국인 같지 않다고 느꼈을 정도로 그 차이가 심함을 보여준다.

 

20년이나 지난 지금, 옛날의 시험 결과 같은 것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건, 고갯길을 걸어가던 국민학생들의 모습과 그 중국인 교사에 대한 것 뿐이다.

 

그리고 얼굴을 들고 가슴을 펴고 자존심을 가지라는 것.

 

생각해 낼 수 있는 건 옛날의 시험 결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 같은 표현을 통해 알짜배기 이야기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시험 결과 이야기를 했다면 소설이 조금 더 루즈하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3.

 

그들 중 한 사람과는 10년 쯤 뒤에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데, 거기에 대해선 좀 더 나중에 얘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무대를 도쿄로 옮긴다.

 

내가 두 번째로 만난 중국인은 - 이렇게 말하는 건, 즉 '별로 친하게 말을 주고 받은 적은 없지만, 클라스메이트였던 중국인을 빼놓고는'이라는 뜻이다 - 대학 2학년 봄에 아르바이트 하던 데서 알게 된 말이 없던 여자 대학생이다.

 

1.은 도서관에서 담배를 피우며 회상하는 장면, 2.는 첫 번째 중국인, 3.은 두 번째 중국인에 관한 내용이다. '거기에 대해선 좀 더 나중에 얘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표현을 통해서 4.에는 세 번째 중국인이 언급되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①그런데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줄곧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삼켜 버리려고 해도 까끌까끌한 것이 목에 걸려 있어서 넘길 수가 없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나는 어쩐지 황당한 실수를 저지른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것이 뭔가를 알아챈 것은 15분 후였다. 그제야 나는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를 반대편인 야마테 병원 전철에 태워 보냈던 것이다.

 

그녀의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려 무릎 위의 코트에 굴러 떨어졌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잠자코 앉아 있었다. 전철이 몇 대나 달려와서 승객들을 토해 놓고 지나갔다. 그들의 모습이 계단 위로 사라지자 다시 조용해졌다.

 

'전철이 몇 대나 달려와서 승객들을 내려 놓고 지나갔다. 그 때마다 나는 토하는 듯한 기분이 되곤 했다.'라고 표현할 문장을 '승객을 토해 놓고 지나갔다.'는 표현을 통해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그리고 이런 표현을 통해서 문장을 더욱 경제적이고 감각적으로 만들었다.

 

②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혼자 벤치에 남아, 마지막 담배에 불을 붙이고, 빈 담뱃갑을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시간은 벌써 12시가 다 되었었다.

 

내가 그날 밤에 저지른 두 번째 실수를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9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그건 너무나도 바보스럽고, 너무나도 치명적인 잘못이었다. 빈 담뱃갑과 함께 그녀의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 성냥까지 함께 버렸던 것이다.

 

나는 모든 방법을 다해 알아보고 다녔지만, 아르바이트하던 곳의 명부에도, 전화 번호부에도, 그녀의 전화 번호는 없었다.

 

①과 ②는 병렬행 진행으로 보인다. 첫 번째 실수는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15분 만에 알아차렸고, 두 번째 실수는 그녀와 헤어진지 9시간 이나 지난 뒤에 알아차렸다. 첫 번째 실수를 만회했던 것이 두 번째 실수를 통해 오히려 악영향으로 다가온다. 그녀에게 더욱 처절한 감정을 안겨준 것이다.

 

'마지막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에서 볼 수 있듯이 1.에서 담배를 피우듯 두 번째 중국인 이야기에서도 담배를 피운다.

 

 

4.

 

"그렇지요, 네?"

 

나는 깜짝 놀라 책으로부터 눈을 들어 그렇다고 말했다. 상대방의 얼굴은 전혀 생소했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바느질이 고급스런 네이비블루의 블레이저 코트와, 색깔이 잘 맞는 레지멘털 타이를 한 단정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조금씩 닳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양복이 구식이라든가 낡았다든가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그저 닳았다는 말이다.

 

얼굴 생김새도 그와 비슷했다. 단정하고 반듯하긴 하지만, 얼굴에 나타나 있는 표정은, 급한 대로 어디선가 억지로 긁어 모은 단편의 집합에 지나지 않은 듯이 보였다. 마치 갑작스런 파티의 테이블에 차려 놓은 고르지 못한 접시 같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만의 독특한 표현이다.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서만 드러낼 수 있는 묘사 기법을 기묘한 방법으로 그려내듯 표현한다. 옷과 얼굴의 '닳았다'는 공통점을 문단을 바꿔 병렬적으로 드러내었다.

 

나는 그에게 뭔가 중국인에 관한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상투적인 인사말을 입에 담았을 뿐이다.

 

지금이라고 해도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5.

 

후줄근한 빌딩, 이름도 없는 사람들의 군상, 끊임없는 소음, 빽빽하게 늘어선 자동차 행렬, 회색빛 하늘, 공간을 뒤덮는 광고판, 욕망과 체념과 초조함과 흥분. 거기에는 수많은 선택과 무수한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건 무수이자 동시에 제로였다. 우리는 그러한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 또한 우리 손에 있는 것은 제로였다. 그것이 도시였다.

 

화자는 결국 '모든 것은 제로다'고 말하면서 무상함을 표한다. 이는 1.에서 쓰여진 문장과도 매치를 이룬다.

 

먼저 한 가지는, 내가 최초로 중국인을 만난 정확한 날짜 따위에 누가 흥미를 가질까 하는 거였고, 다른 한 가지는 볕이 따스하게 드는 도서실의 책상에 놓인 낡은 신문 연감과 나 사이에, 더 이상 서로 나눠 가질 그 무엇이 존재한단 말인가 하는 거였다.

 

화자는 1.에서 담배를 피우며 무상함(제로)를 느꼈다. 2에서는 얼굴을 들고 가슴을 펴고 자존감을 가지라는 것 외에 모든 것을 잊었다. 3에서는 그녀와의 연락이 두 번의 실수를 통해 두절되었다. 두 번째 실수를 알아채기 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통해 '어쩌면 이 역시 제로에 대한 복선'임을 깨닫게 한다. 4.에서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고 아무 말도 못했다. 지금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표현을 통해 제로를 귀결된다.

 

도쿄 거리에 나의 중국이 재처럼 쏟아져서 이 거리를 결정적으로 침식해 간다. 그것은 자꾸자꾸 허물어져 가고 있다.

 

그렇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말은 사라지고, 우리가 품었던 꿈도 언젠가는 아슴푸레 잊혀져 간다. 저 영원으로 이어질 줄 알았던 지루한 애돌레슨스가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잦아들어 소멸되듯이.

 

이 지점에 이르러 모든 것이 제로로 통함을 강조한다. 침식해하고, 허물어지고, 사라지고, 잊혀져가고, 잦아들며 소멸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결말이 결국 무상하게 끝이 난다는 점이다. 이 소설도 그렇다. 감각적인 어휘들로 묘사되는 일화들은 결국 무상함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였다.

 

이 소설의 구조적인 모습과 시간적인 흐름은 이렇다.

 

<구조적 특징>

 

1. → 2.3.4. → 5.

 

2.3.4.는 1.과 5. 사이에 들어있는 중국인들에 관한 일화이다. 5.에서는 극명하게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1.2.3.4.5. 사이가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여러가지 정교한 도구들을 이용한다.

 

 

<시간적 흐름>

 

2. (10년 뒤)→ 3. → 4.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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