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또래 친구들 중에서 키가 작은 편이었다.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들끼리 얼마나 차이가 있겠냐만 당시 내게는 큰 문제였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놀고 집으로 돌아가려면 엘리베이터에서 9층 버튼을 눌러야했는데, 나는 까치발을 들고 팔을 쭉 뻗어보아도 손은 7층과 8층 사이에서 허우적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친구는 키득키득 웃으며 손쉽게 9층 버튼을 누르곤 했다. 그건 무척이나 분한 일이었지만 딱히 다른 방도를 취할 수 없었다.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다. 친구가 옆에 있는데 뛰어서 9층 버튼을 누른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도토리였던 내 별명은 ‘도토리 점프’가 되었다. 별명이 길어진다는 건 대체로 반기지 못할 일이다.

 

  당시 가장 별명이 길었던 친구는 육진우라는 애였다. 성이 특이할뿐더러 뚱뚱한 편이어서 그 아이는 최적의 놀림감이었다. 돼지라고 불리던 아이는 돼지밥통, 말랑말랑 돼지밥통, 말랑말랑 오줌쟁이 돼지밥통이 되어갔다. 부끄러운 미들네임이 생긴 그 날, 진우는 수많은 친구들 앞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마음씨 여린 여자 아이들이나 몇몇 남자 애들은 ‘ 우를 놀리지 마!’라고 울보를 변호했다. 나도 덩달아 변호하는 축에 속해 있었지만 진우가 우는 모습은 꽤 우스운 꼴이었다고 고백할 수 있다. 그건 정말, 돼지밥통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린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던 하루가 지나면 다시 친해지곤 했다.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놀이터는 아이들의 아지트였다. 그 단지 내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가 그 놀이터에서 놀았기 때문이다. 바닥은 모래로 이루어져있고 꽤 많은 기구들이 있는 곳이었다. 활동적인 애들은 정글짐이나 미끄럼틀에서 탈출놀이라는 위험천만한 놀이를 했고, 벌레를 두려워하지 않는 애들은 애벌레를 잡아 ‘애비!’하고 친구들 눈앞에 들이밀었다. 나는 벌레도 무서워하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것도 두려워했기에 두 모임에는 낄 수가 없었다. 대신 쑥이나 나뭇잎, 흙 등을 돌로 빻아서 약국놀이를 하는 모임의 일원이었다.

 

  우리는 놀이터 밖으로 나가 주차 공간 뒤에 있는 화단에서 부드러운 흙과 쑥, 빻았을 때 물이 많이 나오는 식물들을 모았다. 놀이터로 돌아오면 그것들을 나무상 위에 올려놓고 돌로 열심히 뭉갰다. 그러다보면 그것들은 자연스레 하나의 덩어리가 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염치없게도 ‘약’이라고 불렀다. 다행히 우리는 여자 애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모임이었기에 약을 복용하는 일은 없었다. 그걸 먹었다간 진짜 약을 먹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여느 때처럼 나는 놀이터로 나갔다. 그 날은 유독 하늘이 맑은 날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시험 삼아 9층을 향해 팔을 뻗었더니 8층을 누를 수 있게 되어서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다. 키가 조금 컸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탈출놀이 모임에 낄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용기를 내어 나는 약국 모임이 아니라 탈출놀이 모임에 끼어들었다. 놀이터 내에 있는 모임들은 자연스레 사라지거나 융합되고 새로운 것이 생기곤 했기에 그 이전 역시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탈출놀이를 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조그마한 심장이 콩콩 뛰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오늘은 모래 산으로 갈 거야.’라고 말하여 내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모래 산은 놀이터 뒤편에 있는 언덕을 뜻했다. 그 모래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담벼락을 넘어야 했는데 내 키와 담력으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모래 산 정복은 11층을 누를 수 있는 아이들에게도 버거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날도 뾰족한 돌로 약을 빻기만 했다. 얼마 있자 위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모래 산에 오르는 것에 성공한 3명의 아이들이었다. 그 3인이 아래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은 흡사 금메달을 딴 3명의 태극전사 같았다. 마지못해 나도 그 전사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모래 산에서 내려온 세 명의 친구들은 영웅이 되었다. 금단의 영역에 올라가서 왠지 어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보다 키가 크고 활달했던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될 자격도 충분했다. 우리들의 화두는 모래 산이 되었고, 벌레들을 잡던 애들도 담벼락을 넘는 연습을 시작했다. 여자아이들도 모래 산 오르기에 관심을 보였다. 나 역시 담벼락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키가 어서 빨리 컸으면 해서 우유도 평소보다 많이 마시고 일찍 자는 어린이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거짓말처럼 수능을 보았다. 이는 순차적이었지만 순간적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엘리베이터에 있는 모든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되었고, 12시 이후에 자게 되었고, 산타클로스를 잊은 대신 이번 크리스마스는 누구와 보낼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핸드폰을 가지게 되었고, 축구를 보며 맥주를 홀짝일 줄도 알게 되었다. 일기장을 검사 받던 일도, 수업 시간에 몰래 졸던 날도, 제주도로 떠난 수학여행도, 점수가 생각같이 잘 나오지 않아 힘들어했던 것도, 얼마 전가지 멀쩡했던 내 정신도 지나가버린 것이다.

 

  일어나고 보니 나는 흙무더기 위에서 누워있었다. 겨울이 되기 직전이어서 으슬으슬한 날씨였다. 몸에서는 술 냄새가 지독히 풍겼고 머리는 깨질듯했다. 본능적으로 핸드폰을 확인해보았다. 13통의 부재중 전화와 7통의 문자와(2통은 광고 문자였다) 132개의 카카오톡 알림과 4개의 페이스북 알림이 있었다. 나는 기이하리만큼 담담하게 그것들을 확인하기 시작했고, 모든 알림을 확인한 이후에 몸을 일으켰다.

 

  옷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이곳이 어디인지 둘러보았다. 멀리에 내가 사는 아파트가 보였지만 익숙지 않은 곳이었다. 꿈에서 느끼던 것처럼 지형이 변해버린 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으나 꿈으로 치부하기엔 생생한 감각이 나를 괴롭혔다. 아무튼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이 높은 곳에서 내려가기로 했다.

 

  걸음을 옮기다보니 놀이터가 보였다. 과거의 전경이 보이는 그곳에서 나는 하염없이 울었다. 꼭 한 번 오르고 싶었던, 잊어진 배경 위에서 말이다. 나는 태극전사처럼 멋지게 손을 흔들 수 없었다. 꼬마는 손을 흔들기엔 너무 커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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