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서관의 정문 앞에는 어떻게 된 셈인지 닭장이 있었고, 닭장 안에서는 다섯 마리의 닭들이 좀 늦은 아침인지 좀 이른 아침인지를 먹고 있었다.
이 문장에서 사실만 가지고 문장을 재구성해 보자면 이렇다.
도서관의 정문 앞에는 ①닭장이 있었고, 닭장 안에서는 다섯 마리의 닭들이 ②무언가를 먹고 있었다.
① : 닭장이라는 명사 앞에 ‘어떻게 된 셈인지’라는 수식 어구를 첨가해서 화자의 견해를 표하고 있다.② : ①과 달리 명사 자체를 바꾸었다. ‘좀 늦은 아침인지 좀 이른 점심인지를’이란 표현을 통해서 현재 시각이 11시 경이라는 사실을 역시 화자의 견해로 전환하였다.
이 같은 표현을 통해서 이 소설이 1인칭 시점임을 말하고 있다. 1인칭 시점의 소설을 쓸 경우에는 명사를 수식하는 부분에 화자의 견해 및 생각을 표현하거나, 명사 자체를 주관적 언어로 바꾸어 표현해야 할 듯싶다.
기분 좋은 날씨여서 나는 도서관으로 들어서기 전에 닭장 옆에 있는, 도로 포장에 쓰이는 돌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우기로 했다. 담배를 피우면서 줄곧 닭들이 모이를 먹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밑줄 친 부분을 제외한 부분은 작가의 견해가 표현되지 않았다. 빨간 글씨로 표시한 부분은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도 '○○는 담배를 한 대 피우기로 했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담배를 피우는 것은 이후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단서들을 통해, 이 소설의 주제를 드러내는 부분이라 해석할 수도 있다.
담배를 다 피웠을 때, 내 안의 무엇인가가 확실히 변해 있었다. 그러나 왜인지는 알 수 없는 채, 다섯 마리의 닭과 담배 한 개비만큼의 거리를 두게 된 새로운 나는, 스스로에게 두 가지의 의문을 던졌다.
먼저 한 가지는, 내가 최초로 중국인을 만난 정확한 날짜 따위에 누가 흥미를 가질까 하는 거였고, 다른 한 가지는 볕이 따스하게 드는 도서실의 책상에 놓인 낡은 신문 연감과 나 사이에, 더 이상 서로 나눠 가질 그 무엇이 존재한단 말인가 하는 거였다.
'담배를 다 피웠다.'로 끝날 문장을 화자의 생각 서술을 통해 길게 늘여뜨리고 있다. 나는 '확실히' 변해 있으나 그것이 왜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새로운' 나가 된 그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것은 화자가 설명하듯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였다.'에 대한 서술이다. 하지만 이 중요하지 않은 일들을 서술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러므로 내가 국민학교 시절 [전후 민주주의의 저 우스꽝스럽고도 서글픈 6년 간의 석양의 나날들]을 통해서 제법 정확하게 기억해 낼 수 있는 사건이라고는 단지 두 가지밖에 없다.
하나는 이 중국인 이야기고, 또 하나는 어느 여름 방학 오후에 있었던 야구 시합 이야기다.
여기서 두 가지 일화를 설명하려 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일화는 이 소설의 중심이 되는 이야기들이다. 앞에서 언급했던 문장들과도 제법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게 함으로써 일화를 설명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끔 한다.
2.
나는 아무나 붙잡고, 중국인 국민학교에 대해 아느냐고 묻고 다녔다. 누구 한 사람, 무엇 하나도 알지 못했다. 단지 아는 것이라고는, 그 중국인 국민학교가 우리 학군으로부터 전철로 30분이나 되는 거리에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당시의 나는 혼자서 전철을 타고 어딘가로 갈 수 있는 타입의 아이가 아니였기 때문에, 사실상 나에게 그곳은 '세상의 끝'과 같았다.
세상의 끝에 있는 국민학교.
어린 학생의 심정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 '세상의 끝'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문단을 바꿔 씀으로써 이를 더욱 극적으로 드러냈다. 아이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혀 중국인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나는 이제껏 중국인을 만나 본 일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상상 속의 중국인과 처음 본 중국인인 감독관 선생님의 괴리감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건 전혀 중국인 같지 않다고 느꼈을 정도로 그 차이가 심함을 보여준다.
20년이나 지난 지금, 옛날의 시험 결과 같은 것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내가 생각해 낼 수 있는 건, 고갯길을 걸어가던 국민학생들의 모습과 그 중국인 교사에 대한 것 뿐이다.
그리고 얼굴을 들고 가슴을 펴고 자존심을 가지라는 것.
생각해 낼 수 있는 건 옛날의 시험 결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 같은 표현을 통해 알짜배기 이야기만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시험 결과 이야기를 했다면 소설이 조금 더 루즈하게 진행되었을 것이다.
3.
그들 중 한 사람과는 10년 쯤 뒤에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데, 거기에 대해선 좀 더 나중에 얘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무대를 도쿄로 옮긴다.
내가 두 번째로 만난 중국인은 - 이렇게 말하는 건, 즉 '별로 친하게 말을 주고 받은 적은 없지만, 클라스메이트였던 중국인을 빼놓고는'이라는 뜻이다 - 대학 2학년 봄에 아르바이트 하던 데서 알게 된 말이 없던 여자 대학생이다.
1.은 도서관에서 담배를 피우며 회상하는 장면, 2.는 첫 번째 중국인, 3.은 두 번째 중국인에 관한 내용이다. '거기에 대해선 좀 더 나중에 얘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표현을 통해서 4.에는 세 번째 중국인이 언급되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다.
①그런데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줄곧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삼켜 버리려고 해도 까끌까끌한 것이 목에 걸려 있어서 넘길 수가 없었다. 뭔가 잘못되었다. 나는 어쩐지 황당한 실수를 저지른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그것이 뭔가를 알아챈 것은 15분 후였다. 그제야 나는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를 반대편인 야마테 병원 전철에 태워 보냈던 것이다.
그녀의 눈에서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려 무릎 위의 코트에 굴러 떨어졌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우리는 한참을 그렇게 잠자코 앉아 있었다. 전철이 몇 대나 달려와서 승객들을 토해 놓고 지나갔다. 그들의 모습이 계단 위로 사라지자 다시 조용해졌다.
'전철이 몇 대나 달려와서 승객들을 내려 놓고 지나갔다. 그 때마다 나는 토하는 듯한 기분이 되곤 했다.'라고 표현할 문장을 '승객을 토해 놓고 지나갔다.'는 표현을 통해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그리고 이런 표현을 통해서 문장을 더욱 경제적이고 감각적으로 만들었다.
② 그리고 그날 밤,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혼자 벤치에 남아, 마지막 담배에 불을 붙이고, 빈 담뱃갑을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시간은 벌써 12시가 다 되었었다.
내가 그날 밤에 저지른 두 번째 실수를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9시간이나 지난 뒤였다. 그건 너무나도 바보스럽고, 너무나도 치명적인 잘못이었다. 빈 담뱃갑과 함께 그녀의 전화번호가 적힌 종이 성냥까지 함께 버렸던 것이다.
나는 모든 방법을 다해 알아보고 다녔지만, 아르바이트하던 곳의 명부에도, 전화 번호부에도, 그녀의 전화 번호는 없었다.
①과 ②는 병렬행 진행으로 보인다. 첫 번째 실수는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15분 만에 알아차렸고, 두 번째 실수는 그녀와 헤어진지 9시간 이나 지난 뒤에 알아차렸다. 첫 번째 실수를 만회했던 것이 두 번째 실수를 통해 오히려 악영향으로 다가온다. 그녀에게 더욱 처절한 감정을 안겨준 것이다.
'마지막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에서 볼 수 있듯이 1.에서 담배를 피우듯 두 번째 중국인 이야기에서도 담배를 피운다.
4.
"그렇지요, 네?"
나는 깜짝 놀라 책으로부터 눈을 들어 그렇다고 말했다. 상대방의 얼굴은 전혀 생소했다. 나와 비슷한 나이에 바느질이 고급스런 네이비블루의 블레이저 코트와, 색깔이 잘 맞는 레지멘털 타이를 한 단정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조금씩 닳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양복이 구식이라든가 낡았다든가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그저 닳았다는 말이다.
얼굴 생김새도 그와 비슷했다. 단정하고 반듯하긴 하지만, 얼굴에 나타나 있는 표정은, 급한 대로 어디선가 억지로 긁어 모은 단편의 집합에 지나지 않은 듯이 보였다. 마치 갑작스런 파티의 테이블에 차려 놓은 고르지 못한 접시 같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만의 독특한 표현이다.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서만 드러낼 수 있는 묘사 기법을 기묘한 방법으로 그려내듯 표현한다. 옷과 얼굴의 '닳았다'는 공통점을 문단을 바꿔 병렬적으로 드러내었다.
나는 그에게 뭔가 중국인에 관한 것을 얘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내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상투적인 인사말을 입에 담았을 뿐이다.
지금이라고 해도 역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5.
후줄근한 빌딩, 이름도 없는 사람들의 군상, 끊임없는 소음, 빽빽하게 늘어선 자동차 행렬, 회색빛 하늘, 공간을 뒤덮는 광고판, 욕망과 체념과 초조함과 흥분. 거기에는 수많은 선택과 무수한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건 무수이자 동시에 제로였다. 우리는 그러한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 또한 우리 손에 있는 것은 제로였다. 그것이 도시였다.
화자는 결국 '모든 것은 제로다'고 말하면서 무상함을 표한다. 이는 1.에서 쓰여진 문장과도 매치를 이룬다.
먼저 한 가지는, 내가 최초로 중국인을 만난 정확한 날짜 따위에 누가 흥미를 가질까 하는 거였고, 다른 한 가지는 볕이 따스하게 드는 도서실의 책상에 놓인 낡은 신문 연감과 나 사이에, 더 이상 서로 나눠 가질 그 무엇이 존재한단 말인가 하는 거였다.
화자는 1.에서 담배를 피우며 무상함(제로)를 느꼈다. 2에서는 얼굴을 들고 가슴을 펴고 자존감을 가지라는 것 외에 모든 것을 잊었다. 3에서는 그녀와의 연락이 두 번의 실수를 통해 두절되었다. 두 번째 실수를 알아채기 전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통해 '어쩌면 이 역시 제로에 대한 복선'임을 깨닫게 한다. 4.에서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고 아무 말도 못했다. 지금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표현을 통해 제로를 귀결된다.
도쿄 거리에 나의 중국이 재처럼 쏟아져서 이 거리를 결정적으로 침식해 간다. 그것은 자꾸자꾸 허물어져 가고 있다.
그렇다,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말은 사라지고, 우리가 품었던 꿈도 언젠가는 아슴푸레 잊혀져 간다. 저 영원으로 이어질 줄 알았던 지루한 애돌레슨스가 인생의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잦아들어 소멸되듯이.
이 지점에 이르러 모든 것이 제로로 통함을 강조한다. 침식해하고, 허물어지고, 사라지고, 잊혀져가고, 잦아들며 소멸된다.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결말이 결국 무상하게 끝이 난다는 점이다. 이 소설도 그렇다. 감각적인 어휘들로 묘사되는 일화들은 결국 무상함을 드러내는 도구로 쓰였다.
이 소설의 구조적인 모습과 시간적인 흐름은 이렇다.
<구조적 특징>
1. → 2.3.4. → 5.
2.3.4.는 1.과 5. 사이에 들어있는 중국인들에 관한 일화이다. 5.에서는 극명하게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1.2.3.4.5. 사이가 매끄럽게 진행되도록 여러가지 정교한 도구들을 이용한다.
<시간적 흐름>
2. (10년 뒤)→ 3. → 4. → 1.5.
'글상자 > 소설분석'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편소설분석] 5. 크랴샤 - 김중혁 (0) | 2013.02.03 |
---|---|
[단편소설분석] 4. 유리의 도시 - 김중혁 (0) | 2013.02.02 |
[단편소설분석] 3. 목걸이 - 귀 드 모파상 (0) | 2013.02.01 |
[단편소설분석] 2.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 박민규 (0) | 2013.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