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평범한 도시에서 가로 세로 십 미터 크기의 대형 유리가 떨어지는 사고가 일어난다. 대형 유리는 길을 지나던 다섯 명의 머리 위로 떨어져 큰 인명 피해를 입힌다. 이 이후 서울에서는 대형 유리가 조용히 건물에서 떨어져 나와 사고가 일어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재해방지대책본부의 도심팀장 이윤찬은 정남중 형사와 함께 이 일을 맡게 된다. 정남중은 이 사건들이 마치 '대형 유리의 자살'같다고 말한다. 말이 되는 소리냐고 이윤찬은 뭐라 하지만, 실로 그것은 유리의 자살이라고 밖에 설명되지 않을만큼 미스테리한 일이였다.

 

이윤찬은 하성우라는 유리 건축의 일인자를 만난다. 하지만 그는 비협조적 태도를 보이며 매우 불쾌해한다. 그리고 또 다시 터지는 유리 낙하 사고.

 

떨어진 유리 성분검사의 결과를 알아보자, 알루미노코바륨이 유리 속에서 검출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성분은 특정 물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범인은 이 물질을 알고 있을 것이라 추측하는 이윤찬과 정남중.

 

한편 이 사건의 범인인 고은진은 이 년 전 알루미노코바륨과 유리의 상관관계를 알게 되었다. 일 년간의 연구 끝에 그녀는 그 물질이 어떤 상황에서는 유리를 일순간에 수축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일 년 전, 친구 정지현이 죽었던 때를 기억한다. 매력적이였던 그녀는 고은진과 절친한 사이였다. 하지만 고은진이 알루미노코바륨의 비밀을 알게 되어 일주일만에 정지현이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혀 연관없는 두 사건이 하나로 연관되어 있다고 느낀 고은진. 그녀는 정지현의 남자친구가 뒤에서 민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그 이후 그녀에게 환각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지현이 창 밖에서 수없이 떨어지는 모습을 말이다. 그녀가 바닥으로 떨어지면 유리처럼 깨졌다.

 

그녀는 유리를 수축시키는 총을 들고있다가 이윤찬과 정남중에게 체포되었다. 이윤찬은 그녀에게 심문을 하지만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알루미노코바륨과 초음파의 관계는 일급 비밀로 부친다. 누군가 알게 된다면 엄청난 수의 창문이 테러 대상으로 변할 것이므로.

 

그로부터 한 달 뒤, 장마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유리가 다시 한 번 추락했다. 사건보고를 받은 이윤찬은 고은진과의 공범이 있다고 본다. 비가 내리는 날 택시를 타고 있던 이윤찬. 그는 어쩌면 공범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 잠시 생각한다. 창문을 박살내는 건 사람이 아니라 어떤 소리가 아닐까. 택시의 창문을 열고 흐릿한 빌딩들을 쳐다보는 그는, 시트가 젖는다 말하는 택시기사의 말을 듣고 창문을 닫는다. 닫자마자, 먹을 것을 찾아 몰려드는 생물체처럼 빗방울이 창문으로 달려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2. 분석

 

대형 유리는 길을 지나던 다섯 명의 머리 위로 떨어졌고, 그 중 세 명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한 명은 대형 유리의 모서리가 눈을 관통한 후 뒷골로 튀어나왔고, 한 명은 커다란 유리 파편이 몸을 두 동강 냈다. 나머지 한 명은 온몸에 수천 개의 유리 파편이 박혀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다. 유리의 추락 지점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두 명은 살갗 여기저기 유리 파편이 박혔지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서울시 광찬구 미온동에서 벌어진 이 사고는 첫번째 유리 사고로 기록됐다.

 

갑작스럽게, 별다른 설명도 없이 대형 유리 추락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 사고는 '첫번째' 유리 사고로 기록되었다 한다. 작가는 이 유리 사고들을 이 소설의 메인 디쉬로 삼을 것이다.

 

 

"모든 정황을 종합해봤을 때 유리의 자살로 마무리지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여기 벽에 붙어 있다가 너무 힘들어서 아래로 뛰어내린 거죠. 그늘이 없어서 너무 힘들어요. 그러면서, 사무실 안녕, 하면서 말이에요. 하하하."

 

유리 사고와 관련된 일을 맡게 된 정남중 형사의 말이다. 그는 이 사건을 '인명피해'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 장난삼아 한 말이지만,무생물인 유리를 생명처럼 인식하여 유리의 자살 사건으로 바라본다. '유리의 추락사'라고 보는 이 시각은, 소설의 전반적인 주제를 조율한다. 이후 등장하는 정지현의 자살사건처럼 말이다.

 

 

정지현이 죽은 다음 날부터 고은진에게 환각이 보였다. 창 밖을 멍하니 보고 있을 때면 누군가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게 느껴졌다.

 

한 달이 지나자 고은진은 환각을 즐기기 시작했다. 정지현이 떨어지는 모습을 즐길 뿐 아니라 환각을 키우기도 했다. 정지현은 높은 곳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유리처럼 깨졌다. 눈과 코와 살갗과 손톱과 젖꼭지가 부서진 다음 유리 파편처럼 사방으로 떨어졌다. 피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고 몸 전체가 작은 알맹이가 되어 튀었다. 고은진은 눈 한 번 깜짝하지 않고 그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나중에는 직접 환각을 만들었다. 원하기만 하면 정지현이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져내렸고, 바닥에 떨어지면서 유리처럼 깨졌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는 고은진에게만 들렸다. 높고 신경질적인 파열음이었다. 상상속의 소리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선명했다. 고은진은 그 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유리를 바닥으로 떨어트려 엄청나게 시끄러운 소리를 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유리와 함께 사람들이 떨어져 작은 알갱이로 산산조각나는 장면과 소리를, 고은진은 자주 생각했다.

 

고은진에게 대형 유리는 정지현과 등가 교환한 그 무엇이었다. 유리는 정지현이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바닥으로 떨어진다. 유리는 곧 생명이 되고 바닥 위에 사는 사람들은 무생물이 된다. 이를테면, 유리 조각 정도로 치부되는 것이다. 무고려의 대상이다. 상상 속의 소리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선명했을 때에는, 환각 속에서 고은진이 초음파 총을 유리를 향해 쐈을 때였을 것이다. 진실과 허상은 고은진에게 옅은 층으로 구분된다.

 

정남중 형사는 옳게 보았던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옳은 시선이 아니였을 수도 있다. 고은진은 정지현이 죽은 이유가 그녀의 남친이 뒤에서 밀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은진은 그녀의 남자친구처럼 유리의 등을 미는 행위를 했을 뿐이다. 어찌보면 정지현을 밀었다고도 볼 수 있다.

 

시선은 모호하다. 유리의 자살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 유리의 타살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지 말이다. 정지현이 죽은 사유를 잘 모르는 것처럼, 유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찌보면, 유리를 인격으로 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시선이 발생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윤찬은 버튼을 눌러 택시 창문을 닫았다. 창을 닫자마자, 먹을 것을 찾아 몰려드는 생물체처럼 빗방울이 창문으로 달려들었다.

 

빗방울은 초음파를 증폭시켜 유리 사고가 더 잘 나게 하는 매개체라고 앞에서 드러난 바 있다. 빗방울 역시 생명체처럼 묘사되고 사람들은 생명이 없는 존재처럼 드러난다.

 

제목에서 드러나듯, 이 도시는 사람들의 도시가 아니라 '유리의 도시'이다. 살아 숨쉬는 유리의 도시인 것이다. 알루미노코바륨이란 매개체로 그들의 추락사 이야기가 된 것이다. 곧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정지현의 분신들이라 할 수 있는 유리라는 속성이다. 조용히 추락하여 아름답게 산산조각나는 유리의 이야기, 그들의 추락은 결코 범인(凡人)들의 그것처럼 추악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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