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잘못이랄지, 간혹 하급 관리의 가정에 예쁘고 귀여운 여자 아이가 태어나는 일이 있다. 그녀는 그런 고운 처녀였다. 지참금도 없고 유산이 굴러들어올 만한 데도 없으며, 행세깨나 하는 돈 많은 남자를 만나 귀여움을 받으며 아내로 맞아질 그런 연줄도 없었다. 결국 문교부 근무의 한 하급 관리가 청혼하는 데로 결혼해 버리고 말았다.

 

온갖 좋은 것, 값진 것 때문에 자기가 태어났다고 생각하고 있는 만큼 그녀는 매일 구차스런 살림이 고통의 연속이었다. 초라한 집, 얼룩진 벽, 부서져 가는 의자, 누덕누덕 기운 빨랫줄에 널린 빨래, 모두가 보기 싫고 괴로움의 씨였다. 같은 계급의 딴 여자라면 그다지 상심치 않을 그런 모든 것이 그녀를 괴롭히고 부아를 돋구었다.

 

주인공 로아젤 부인은 아리따운 아가씨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한다. 그녀의 삶은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그녀는 나들이옷도 없으려니와 장신구도 없고 뭣 하나 갖고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그런 것만이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런 것 때문에 자기는 태어났다고 그녀는 자각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것,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것, 사람들의 화제의 대상이 되는 것, 이것이 그녀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그녀의 외모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이다. 아리따운 얼굴에 걸맞는 나들이옷과 장신구가 그녀의 곁에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런 것 때문에 자기가 태어났다고 자각한다. 고통을 스스로 받는 겪이다.

 

 

"이것봐, 이게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야."

아내는 바삐 봉투를 뜯고는 인쇄한 카드를 꺼내었다. 이와 같이 써 있었다.

'문교장관 및 조르쥬 랭뽀로 부인은 로와젤 씨와 동부인을 오는 1월 8일 월요일 밤, 관저에 오십사 초대합니다.'

그러나 남편의 기대처럼 기쁜 마음으로 어쩔줄 몰라 하기는커녕, 아내는 분한 듯이 식탁 위에 초대장을 내던지면서 중얼댔다.

"이걸 어떡하라는 거죠?"

 

"아무 것도 아녜요. 다만 제겐 나들이옷이 없어요. 그러니까 축하하는 모임에는 가질 못해요. 나보다도 옷을 많이 가진 부인이 있는 동료가 계시다면, 어느 분에게든지 초대장을 드리세요."

 

그녀에게는 예쁜 나들이옷과 장신구가 없다. 때문에 초대장은 그녀에게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누추한 복장으로 파티에 참석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보 마칠드, 얼마쯤이나 하는 거야? 그런데 입고 나가서 부끄럽지 않고 딴 때도 입을만한, 어딘가 시원하고 수수한 것으로 말이야?"

그녀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여러 가지의 속셈을 하고 또 조금밖에 벌지 못하는 하급 관리인 남편이 깜짝 놀래어 대뜸 거절의 비명을 지르지 않을 한도 내에서 청구할 수 있는 금액이 얼마나 될까, 하며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파티에 갈 생각이 없고(형편만 아니라면 무척이나 가고 싶지만) 남편의 생각을 관철시키려 한다.

 

 

"정확히는 나도 말할 수 없지만 4백 프랑만 있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이 생각돼요."

남편은 약간 창백한 얼굴을 했다. 바로 그만한 액수의 돈을 남겨 두었던 것이다.

 

남편은 그녀를 위해 400프랑을 준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해하는 그녀. 그녀에게는 장신구가 없기 때문이다.

 

 

"장신구랄 게 하나라도 있어야죠. 보석 한 개 없어요. 몸에 붙일 것이 하나도 없다니, 궁색해 보이겠죠. 그 날 밤 모임엔 숫제 안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당신도 바보군! 당신 친구 훠레스체 부인을 찾아가서 장신구 좀 빌려 달라고 부탁해 보면 되지 않아. 퍽 친한 사이니까 그쯤은 빌려 줄거야."

아내는 환호성을 올렸다.

"참, 그래요. 어쩜 생각도 못했어요."

 

아내의 고민이 단박에 해결되는 순간이다. 그녀는 퍽 파티에 가고 싶었던 모양이다.

 

 

까만 비단으로 싸인 상자 속에 찬연한 다이아 목걸이였다. 그녀의 가슴은 억제할 수 없는 욕망 때문에 몹시 울렁이였다. 그것을 집으며 그녀의 손은 떨렸다. 목덜미가 덮이는 옷이었지만 그래도그 목걸이를 달아 보고 거울 속의 제 모습을 보면서 도취되었다.

그리고 주저하며, 불안에 목메인 소리로 물었다.

"이거 빌려 줄 수 있어? 이것 하나면 좋겠는데."

"그럼, 그럼, 괜찮아."

 

다이아 목걸이는 그녀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다. 하지만 불안은 복선이였을까. 불안은 곧 현실화된다.

 

 

남자란 남자는 모두 그녀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그녀의 이름도 소개 받기를 원했다. 정부의 높은 사람들이 모두 그녀와 함께 왈츠를 추고 싶어했다. 대신도 그녀의 존재에 주목했다.

 

그녀는 취한 듯한 기분으로 정신없이 춤을 추었다. 쾌락에 취한 것이었지만 딴 것은 아무 것도 생각지 않았다. 그녀 미모의 승리, 이 밤 성공의 영광, 이 모든 치사와 찬미, 각성된 욕망, 여자의 가슴에 더할 나위 없는 달콤한 승리, 그러한 것에서 생기는 일종의 행복의 구름, 그 속에서 일체를 잊었다.

 

축하회 날 그녀는 자신이 생각한 어느 이상에 가까워진다. 새로 입은 옷과 목걸이는 그녀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과 같았다.

 

 

그녀는 어깨를 감싼 옷을 벗어 던지고는 거울 앞에 서서 다시 한번 자기의 모습을 영광 속에서 바라보려했다. 돌연 그녀는 앗, 하고 소리쳤다. 목걸이가 없어진 게 아닌가.

 

영광의 순간을 돌이켜보려는 찰나, 목걸이가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불안이 현실화되는 순간.

 

 

파레 로와이 야르의 어느 상점에서 두 사람은 찾고 있는 다이아의 목걸이와 똑같은 다이아를 찾아냈다. 4만 프랑이었다. 3만 6천 프랑까지는 에누리해 준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가정에게, 3만 6천 프랑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이었다. 그들은 반생을 바쳐도 갚을 힘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를 이 돈을 구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돈을 꾸어야 했다.

 

 

십 년이 지나서야 두 사람은 한 푼 남기지 않고 일체를 갚았다. 고리대금의 터무니 없는 이자, 쌓이고 쌓인 이자의 일체를 지불한 것이었다.

 

10년 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개고생'해서 모든 돈을 갚았다. 작은 목걸이 하나 때문에 10년을 지불한 셈이다. 이 모습은 빈부격차와 그 빈부격차를 가속화하는 틀인 고리대금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로와젤 부인이 지금은 할머니로 보였다. 그렇지만 이따금 남편이 직장에 나가고 없는 동안 창가에 앉아서 그 옛날 야회의 일, 자기가 그렇게나 아름다웠고 그렇게도 대우를 받아 여왕처럼 행세했던 무도회의 일로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다.

 

그 목걸이를 잃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이 일어나을까? 그 누가 알랴! 인생이란 참으로 기묘한 것, 참으로 변하기 쉬운 것이다. 사람 하나를 파멸하고 구원하는 데 어쩌면 그렇게 작은 것 하나로 충분할까!

 

작가의 '평'이다. 작가가 직접 목소리를 낸 것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평은 곧 주제이기도 하다. 사람 하나를 파멸하고 구원하는 데는 크기에 구애받지 않는다.

 

 

"뭐! 마칠드! 많이 변했구나!"

"그래, 변했어. 무척 고생을 했단다. 그 전에 너를 만나고부터야. 그것도 너 때문이었어!"

"나 때문에?...... 어쩜, 왜?"

"너 기억 나니, 그 다이아의 목걸이 말이야. 관저의 야회에 가는 데 내게 빌려준 거?"

 

마칠드는 자신이 10년 간 폭삭 늙고 고생한 이유가 훠레스체 부인이 빌려준 다이아 목걸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것 대신 딴 다이아 목걸이를 샀단 말이지?"

"응, 그래. 너 몰랐었구나. 하긴 똑같은 목걸이었으니까."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자랑스러운 듯 순진한 웃음을 띠었다. 훠레스체 부인은 숨이 탁 막혀 친구의 양 손을 잡았다.

"어쩜! 어떻하면 좋아, 마칠드! 내껀 가짜였어, 기껏해야 5백프랑 밖에 안 된 물건인데......."

 

이런, 결말에서 목걸이가 가짜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결국 마칠드가 고생한 이유는 목걸이 때문이 아니였다. 그녀의 성격 때문이었다. 그녀의 허영심이 적었더라면 훠레스체 부인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어떻게 해야할 지 물어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 그 이전에 파티에 가기 위해서 상당한 준비를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에게 아름다운 외모가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던 이유는 외모가 곧 허영심으로 발전했기 때문이었고, 그 허영심이 삶을 망쳐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러니컬한 비극은 곧 성격의 비극이라고 부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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