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좌측엔 플래너와 핸드폰, 그 위에 필통이 있다. 빨간 가죽으로 되어 있는 고양이 필통은 5년째 쓰고 있음에도 말짱한 모습을 자랑한다. 기다란 끈으로 돌돌 마는 형태이다. 그 끈 끝에는 고양이 장식이 달려있었는데, 지금은 가출하고 없다.
이 필통은 어떻게 그에게 왔는가. 때는 바야흐로 2012년, 한 대학생이 인터넷에서 예쁜 필통을 발견했다. 그 대학생은 필통이 아주 마음에 드는 나머지 1+1 이벤트 중이었던 필통을 사들였다. 하지만 사람 대부분은 같은 모양새의 필통을 2개나 필요로 하지 않고, 그 대학생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 대학생은 그 필통을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 팔기로 마음먹는다.
마침 그 시간에 웹서핑이었던 그는 자신의 필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김미피'라고 하는 철제 필통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걸 가방에 넣고 걸을 때면 가끔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수납공간도 넉넉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김미피를 위협하는 자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김미피를 잠깐 동아리 방에 놔두고 다른 곳에 다녀오면
이랬던 그는
이와 같은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주인은 매번 변해버린 김미피의 얼굴을 매번 지우개로 열심히 씻겨주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그와 김미피는 서로 지쳐버린 것이다.
그는 새 필통을 사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그는 어느 문구점에서도 김미피 이상으로 마음에 드는 필통을 발견할 수 없었다. 시중에서 파는 필통들은 대부분 표면이 거칠 거나, 특색이 없거나, 못생겼기 때문이었다. 시중에 김미피 같은 필통은 흔하지 않았다.
그러다 그는 운이 좋게도 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예쁜 필통을 8,000원에 판다는 글을 발견한다. 그는 필통의 유려한 생김새에 매료되어버렸다. 그는 댓글을 남겨 다음날에 필통을 만나볼 수 있었다. 사진발이지 않을까, 설렘 반 걱정 반이었던 그는 필통을 만난 순간 그 생각을 접어야 했다. 그는 그 순간 사랑에 빠져버린 것이다.
그는 고양이 필통에 대해 알면 알수록 필통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 속 짐으로 남았던 김미피를 보내줄 수 있었다.
그와 고양이 필통은 오랜 기간이 지난 요즘도 케미가 잘 맞다고 한다. 물론 그도, 필통도 세월의 흐름을 비켜갈 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행복하게 잘 지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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