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장난삼아 고등학교 3학년 때의 나를 존경한다고 말한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면서 정말 열심히 공부했고, 수능을 치르기 한 달 전부터 컨디션 조절을 위해 식습관, 수면 습관 등을 완벽히 고정했다. 수능을 치루기 전에 보았던 5번의 모의고사에서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받았다. 언어와 외국어 점수보다 수리, 과탐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논술 우선 선발을 노리며 수시는 모두 상향지원했다. 어머니는 내게 너무 상향 지원만 하는 게 아니냐며, 마지막으로 OO대학교를 써보라고 했지만, 다른 수시에 다 떨어지고 그 대학만 붙으면 손해라고 쓰지 않았다.
수능 전날 저녁, 어머니는 나를 태워다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수능 당일 아침, 아버지가 출근길에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 내 생각에도 출근길에 아버지랑 같이 가는 게 낫겠다 싶어 아버지 차를 타고 가겠다고 말했다.
어마어마한 긴장감 속에 1교시 언어를 마쳤다. 6월, 9월 모평에 비해 난도가 확 올라간 느낌이었다. 잘 풀었을까.... 그레고리력 문제가 마음에 걸렸지만, 평소처럼 본 느낌이었다. 치명적인 실수는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수리만 잘 보면 언어 점수는 상관없다. 수리에서 실수만 하지 말자. 실수만 하지 않으면 과탐은 문제없고, 그 성적을 바탕으로 충분히 대학 갈 수 있으니까.
대망의 2교시 수리 영역,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았다. 지난 5년의 모평, 수능을 뒤져보아도 나올 수 없는 난이도의 문제들이 몇몇 보였다. 시간 배분을 위해 넘긴 문제가 하나둘 쌓여가자 너무 당황스러웠다. 이게 뭐지? 남은 문제에 비해 시간이 부족했다. 시험지와 답안지를 걷고 나니 몸에서 진액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수능을 마치고 나서, 가채점을 위해 나의 답을 모두 옮겨적은 수험표 한 장을 들고 학교 밖으로 걸어 나왔다. 혼자 집에 돌아가려고 했는데 정문 쪽에서 어머니가 손을 흔들고 계셨다. 수능을 잘 치르지 못한 것 같아 가슴 한쪽이 무거웠다.
도로는 평소보다 막혔다. 신호 대기를 하며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었다. 어느덧 초록 신호로 바뀌었는데 우리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어 뭐지? 본네트에서 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경적이 울렸다. 시동을 끄고 견인차를 불러야 했다. 어머니와 나는 30분 동안 차 안에 앉아 견인차를 기다렸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가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아침에 자신이 데려다줬으면 큰일 날 뻔 했다고. 어머니는 그 도로 위에서 30분 동안, '우리 아들이 3년 동안 고생해서 준비한 시험인데, 어이없는 사고로 그걸 망칠 뻔했다.'는 가상의 상황을 그렸었던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가 갈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문제의 OO대학교를 정시로 가게 되었다. 수능에서 원하던 성적을 받지 못했으니까. 그런데 만약, 아침에 폐차 직전이었던 어머니 차를 타고 수능을 치러 갔으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똑같은 성적, 혹은 더 좋은 성적을 받았더라도 우리 소심퀸 어머니는 꽤 오랫동안 자신을 탓했을 것이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정말,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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