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죽음을 이야기해야 할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생의 마지막 순간, 세상의 끝에서 삶을 돌아보면 우리가 몰랐던 삶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죽어갈까?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른데, 우리가 사고사로 죽지 않는 한, 보통 3가지 중에 한 가지 질병에 걸려 죽게 된다. 암, 심폐질환 말기, 치매나 노쇠가 그 답이다. 그런데 이 3가지 죽음의 경우마다 몸의 기능 그래프가 전혀 다르다. 암에 걸리게 되면 몸의 기능이 급격하게 나빠지면서 죽게 된다. 심폐질환에 걸리게 되면 몸의 기능이 서서히 나빠지다가 죽게 된다. 치매나 노쇠의 경우엔 몸의 기능이 계속 나쁜채로 있다가 죽는다. 이런 것들을 알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죽기 직전엔 고통스러울까? 연구 결과 사망 직전에 고통을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보통 환자는 꿈을 꾸는듯한 상태로 특별히 심한 고통을 겪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가 타인의 죽음을 겪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 역시 두 가지로 나눠볼 수가 있다. 죽음의 실제 사례에서 미리 환자의 죽음을 예상한 가족들은, '예상된 슬픔'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슬픔을 겪지만 그 정도가 지나치지 않고 금방 삶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갑작스런 죽음을 겪은 가족은 훨씬 심한 고통을 받는다. 그리고 그 고통의 길이가 길다. 아이가 부모의 죽음을 겪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2가지 반응 중 하나를 보인다. 자신을 자책하거나, 자기를 먼저 두고 가버린 부모를 원망한다. 인간은 그런 동물이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마음은 어떻게 움직일까? 보통의 경우, 5가지 단계를 밟게 된다. 첫 번째로 부정과 고립,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부정한다. 두 번째로 분노,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분개한다. 세 번째로 타협. 의료진이나 신에게 의지하게 된다. 네 번째로 절망. 죽음이 코 앞에 다가왔음에 절망한다. 마지막으로 수용. 수용의 경우는 보통 두 가지로 갈린다. 끝이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남은 생을 열심히 살아가자는 쪽과, 이제 끝이니 어쩔 수 없고 그냥 죽음을 맞이하려는 태도가 있다.

우리나라는 죽음을 터부시하는 편이다. 어느 누구도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바로 죽음이 우리의 삶에서 유리되어있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은 집에서 죽지 않는다. 병원에서 죽는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죽는 병원이라는 공간에서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금지되어있다. 환자도, 의사도, 병문안을 찾아온 사람들도 그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진실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이 사례를 듣고 나서 나 역시 죽음을 잘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확률적으로 부모님의 죽음이 내 죽음 이전에 있을 가능성이 크니, 죽음에 대해서 가족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이 건강하겠다.

건강에 신경을 쓰면 죽기 어려울까? 그렇지 않다. 건강하다고 해서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고, 건강의 엽가 수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역시 아니다. 건강은 어디까지나 멋진 인생을 보내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최근에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기술은 지금까지 항상 선형적으로 발달하지 않았다. 지수적으로 발전했다. 앞으로 우리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과학 기술은, 인공지능이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존재는 비존재를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쉽게 상상하기가 어렵다.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마찬가진데, 내가 살아있는 동안 인류가 완전히 멸종하거나, 영생에 가까운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인공지능의 수준 역시 exponential하게 증가하는데, 인간의 수준만큼 인공지능이 발달하게 되는 시기를 긍정적으로는 20년 뒤, 부정적인 전문가들은 40년 뒤 정도로 예측한다. 하지만 인간의 수준이 되었을 때, 인공지능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순식간에 그 수준이 상승한다. 인간과 아메바 정도로 차이가 날 것이다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물론 우리가 아메바고, 인공지능이 인간이다. 긍정적인 면을 살펴보면, 그 수준으로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모든 문제들을 인공지능들은 아주 쉽게 해결하게 된다. 그 문제들 중 하나가 인간의 유한한 삶이라면, 인공지능은 답을 찾을 것이다.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정말 크다. 심지어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래서 죽음에 대한 태도 역시 수업을 들은 직후와 지금이 다르다. 인간은 정말로 영생할 수 있고, 그게 아니라면 완전히 멸종해버릴 수 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그렇다면 영원한 삶은 행복할까? 신이 유일하게 인간을 부러워하는 한 가지가 있는데, 유한성이라고 한다. 아름다움은 유한성에서 나온다. 정말 그렇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영생은 유쾌한 상태가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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