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까치발을 딛고 머리 너머로 화면을 바라본다.
동전 하나로 마지막 단계까지 깬 친구는, 뒤를 슬쩍 둘러보고 자리를 뜬다.
소년은 그가 멋있다고 생각한다.
소년의 게임 실력은 형편없다.
1단계도 버티지 못한다.
그래서 먼발치에서 게임기를 지켜보기만 한다.
순식간에 죽는 눈사람을 많은 사람 앞에서 보일 배짱이, 소년에게는 없다.
동전을 넣었다간 귀가 빨개지고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비켜줄 것이다.
그럴 바에 지켜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5년 후, 소년은 축구를 하고 있다.
소년의 포지션은 수비이고, 중학생들에게 수비란 팀을 나눌 때 맨 마지막에 뽑히는 사람들이 맡는 자리이다.
그는 멀리서 날아오는 공을 받아내지만, 바로 상대 팀 공격수에 의해 뺏긴다.
공격수는 수비 한 명을 더 제치고 골을 넣는다.
체육 선생님이 호루라기를 분다.
산개되어있던 학생들이 운동장 구석으로 모인다.
"못해도 되니까 적극적으로 해!"
골키퍼가 공을 소년에게 주며 말한다.
말이 쉽지.
소년은 공을 선생님에게 넘긴다.
대학생이 된 소년은, 좋아하는 동기가 있다.
그녀는 학과 내에서 인기가 많고, 쾌활한 성격이다.
그녀 주위엔 늘 사람이 많다.
소년은 그녀에게 고백해볼까 고민하지만, 그녀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기분이 든다.
한 달 뒤, 소년은 캠퍼스를 걷다 한 남성과 팔짱을 끼고 걷는 그녀를 본다.
반사적으로 그는 뒤로 돌아 걷는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듯하고,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
그날 밤 소년은 전봇대를 붙잡고 마셨던 것들을 게워낸다.
소년이 평소 같지 않다고 느꼈던 친구는, 영문도 모른 체 말없이 소년의 등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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