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제주 여행은 단순했다. 놀멍, 쉬멍, 걸으멍. 혼자서 올레길을 따라 걷는 게 여행의 목적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표도 끊지 않았다. 딱히 기한을 두고 싶지 않았다. 입대일 전까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상관없었다.
걷는 행위는 단순하다. 왼발을 내디딘 다음 오른발을 내디디고, 다시 왼발을 내디딘다. 그게 걷기의 전부다. 이 여행의 대부분은 걸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매일 상당한 거리를 걸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같이 술을 마셨던 아저씨는 나를 보고 '행군은 걱정 없겠다'고 말했다.
배낭을 매고, 올레길을 상징하는 간세 모형을 따라 걸었다. 배가 고프면 식당에 들어가 밥을 먹었고, 나와서는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했다. 그리고 계속 걸었다. 혼자 걸을 때도, 같이 걸을 때도 있었다. 숙소에서 같이 묵은 여행객들과 걸을 때도 있었고, 개와 함께 걸었던 길도 있었다. 길은 산에서 바다로, 마을에서 외진 곳까지 이어졌다. 스마트폰이 없었던 나는, 올레길 가이드북 하나를 종일 들며 길을 걸었다. 여행이 길어질수록 책이 헤져가는 게 눈에 보였다. 책이 헤져갈수록 입대 일도 다가왔지만, 답답하진 않았다.
아 참! 같이 걸었던 강아지 한 마리를 소개하겠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따라오던 녀석이다. 아니, 보통은 나를 앞서갔다. 자기를 따라오라는 듯이. 갈림길에 이르면 나를 빤히 쳐다볼 만큼 똑똑했다.
아무도 없는 길을 걷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나는 이 녀석에게 말을 많이 걸었다. 녀석은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아, 다시 가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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