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려고 누우면 온갖 잡생각이 혼합되어 멋진 글이 써질 것만 같다.
하지만 그 때는 이미 소등한 상태이고, 쓰는 행위가 불가하다.
‘아! 이렇게 좋은 글감과 글귀들을 옮겨 적을 수가 없다니!’하는 안타까움에 잠은 더욱 오지 않고, 시간은 무심하게 흐른다.
잡생각은 물속에 떨어트린 잉크처럼 퍼져나가고, 나는 이 글을 내일 쓸 생각에 들뜬다.
7시가 되어 불이 켜지면, 한 때 완벽했던 글은 어둠과 함께 사라지고 없다.
글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어디이고 여긴 누구인가도 해결되지 않은 몽롱한 상황에 그까짓 어제 일은 중요치 않다.
씻고, 밥을 먹고, 사무실로 내려오고, 몇 가지 업무를 끝내고 나서야 어젯밤에 어떤 생각을 하면서 잠을 잤는가를 떠올려본다.
안타깝게도 생각나지가 않는다.
단편적인 주제와 글감들은 떠오르지만, 그것은 흩어진 퍼즐조각처럼 산개되어있다.
분명 12월 30일 23시의 나는 완벽한 상태였다.
‘대체 불가능한 것’에 관한 글을 죽죽 써내려갔다.
생각은 어떻게 뻗쳐나갔을까.
아, 아마 2012년의 12월 31일은 어떻게 보냈을까를 떠올리며 시작했을 것이다.
그 날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2011년의 마지막 날은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 때는 밤이었고, 친한 형 집에서 치킨을 먹고 있었다.
아마 맥주도 마셨을 것이다.
사실 그 때 그들과 무엇을 먹었는지는 중요치 않다.
족발이었을 수도 있고, 피자였을지도 모른다.
발렌타인 21년산을 마셨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그 때 우리는 11시 59분에서 12시가 되는 것을 카운트다운 했다.
서로의 나이 먹음을 축하하면서, 21살을 그렇게 먹었다.
나와 같이 맥주를 마시던 두 명의 스물 둘 역시, 새해맞이를 축하하는 메시지로 가득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잠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체 가능하다.
물론 철저하게 ‘나’의 입장에서 말이다.
방금 들렸던 편의점의 알바생이 누구인지, 같이 버스를 타는 승객들이 누구인지는 중요치 않다.
그들은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그들에게도 내가 특별하지가 않다.
그냥 스쳐지나가는 인연94271 정도가 되는 것이다.
나는 당구 치는 것을 좋아한다.
아니, 특정한 사람들과 당구치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대체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사람들과 함께 했던 시간은 기억되고, 그 기억을 기억하는 것이 의미를 가진다.
아마 다른 어떤 사람들과 당구를 쳐도 그들과 함께 치는 것만큼 재미있지가 않을 것이다.
나는 폭넓은 대인관계를 가지는 것보다는 몇몇의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을 만나길 바란다.
그리고 나 역시 그들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