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킬레스는 앞에 도망가는 거북이를 영원히 잡을 수 없다. 아킬레스가 거북이가 처음 있던 점까지 가면 거북이는 이미 어느 정도 전진해서 좀 더 앞에 가 있다. 또 그 점까지 가면 이미 거북이는 좀 더 앞에 나가 있다. 이렇게 계속 전진해 나가면 영원히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잡을 수 없다.
도저히 도달하지 않을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영원히 초등학생일 줄 알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며, 수능을 치른다는 것도 상상하지 않았다. 몇 밤 자고 일어나면 떠날 수 있었던 소풍과 달리 그것들은 불안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원히 겪을 수 없을 것이다 생각했다.
도달하지 않을 것 같았던 순간에 최초로 도달한 사건은, 중학교 입학이었다. 초등학교에서 언덕 위를 바라보면, 80년대에 망한 방직공장처럼 생긴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이 내가 다니게 될 학교였다. 상심이 컸다. 반지하 형태의 교실, 컨테이너 안에 있는 컴퓨터실, 음산한 그림이 걸려있는 복도. 이런 건물은 공포 영화 세트장으로 사용해야 하는데 학교의 기능을 하고 있다니, 세상에.
하지만 놀랍게도 난 학교에 적응했고, 삶은 연속적으로 계속 흘렀다. 오지 않을 것 같은 순간들 - 수능, 입대, 전역 - 도 결국 오기 마련이었다. 제논의 역설은 괴변이었고, 잡히지 않는 거북이 따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도저히 될 수 없을 것 같았던, 어른이 되었다. 지나고 나니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은 듯하다. 그땐 왜 그렇게 멀어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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