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어른이 된다는 건
Q2) 내가 한상식이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Q3) 정상과 비정상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Q4) 올바른 연민이란 무엇인가?
Q5) 이해란 무엇인가?
A1)
“어른이 된다는 거는 인제 니 마음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거야. 자기 행동에 책임도 지고, 남이 날 어떻게 보나 그것도 생각하고, 한마디로 이 사회에 적응을 해야 돼. 그게 어른이 되는 거야.” - 홍종일(안내상)이 홍종두(설경구)를 꾸짖으며
어른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다시 책임이라는 단어를 찾아보니 ‘맡아서 해야 할 임무나 의무. 어떤 일에 관련되어 그 결과에 대하여 지는 의무나 부담.’이더라. 종합해보면 어른이란 신체적으로 성숙하고 하는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홍종일은 부분적으로 맞는 말을 했다.
인간은 사회적 약속을 통해 사회를 구성한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회(社會)는 말 그대로 ‘모이고 모인 것’이다. 인간이 모여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지켜야 할 규약들이 있고, 암묵적인 법칙들이 있다. 전자는 의무나 법이 되고 후자는 예의범절이나 문화가 된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그것들을 배우고 행한다.
홍종두를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덜 사회화된 사람’이다. 전과 3범이고 주위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을 많이 한다.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감독이 우리에게 묻는다. 니들은 어른이야? 니들은 그리 잘났어?
한공주(문소리)에게 맛있는 밥을 먹이기 위해 홍종두는 휠체어를 끌고 식당에 들어간다. 식당에서 밥을 먹던 손님들이 그 둘을 쳐다보았다. 종업원은 “장사 끝났어요. 이제 막 점심시간 끝났어요.”라고 말하며 그들을 쫓아낸다. 손님들은 식당에 찾아온 불청객에게 조소를 보내고 이내 다시 밥을 먹는다.
한공주와 홍종두는 영화 내내 불청객으로 남는다. 그리고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다. 영화에서 비춰지는 사회는 결코 성숙한 사회가 아니다. 성숙하지 않은 사회에 적응해 어른이 된 자는 그 스스로 어른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A2)
한상식은 한공주의 친오빠이다. 한상식은 한공주의 명의를 빌려 아내와 함께 장애인용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한공주는 원래 살던 낡은 아파트에 내버려둔다. 대신 그 옆집에 사는 주민에게 20만원씩 보내주며 한공주를 돌보아달라고 부탁했다. 장애인용 아파트에 점검이 나올 때를 제외하면 그는 그녀를 찾지 않는다.
나는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과 같이 살아본 경험이 없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상상해보곤 한다. 만약 부모님이 치매에 걸리신다면, 나는 부모님을 부양할 수 있을까. 자식이 정신질환을 가지고 태어나면 나는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그런 걸 저울질해보면 괜히 슬퍼진다. 솔직히 말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세상의 시선이 조금 더 따스해지고, 사회적 시스템이 더 나아지면 좋겠다. 그들을 힘들게 하는 건 장애뿐만 아니라 시스템과 사람이기도 하다. 그 둘이 개선된다면, 여전히 힘들겠지만, 전보단 나아지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A3)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을 인터넷에 쳐보았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인 오퍼(Daniel Offer)가 『정상성 : 정신건강에서 이론적, 임상적 개념』이라는 책에서 정상성을 네 가지 관점에서 분류한 내용이 있어 다뤄본다.
첫 번째로 정상성은 건강한 것이다. 이 말은 ‘있어야 할 것이 다 있고, 없어야 할 것은 없을 때’가 정상이라는 말이다. 손가락이 6개이거나 ‘나는 우주인과 소통할 수 있다.’는 과대망상을 가지고 있다면 비정상이다.
두 번째로 정상성은 평균이다. 정상적인 사람은 통계분포에 따를 때 평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 속하리라는 관점이다. 대표적인 지표로 IQ가 있는데, IQ값이 70~130 이내에 있으면 정상이라 보고, 이 구간에 벗어나는 IQ를 가지고 있다면 비정상이라고 본다.
세 번째로 정상성은 과정이다. 정상인지를 정의할 때 ‘시간성’을 보는 것이다. 연령별로 기대하는 일을 잘 해내면 정상으로 보고, 그렇지 않으면 비정상으로 본다. 혹은 나이에 비해 노화가 빨리 진행되어 일상적인 활동이 힘들 경우도 비정상으로 본다.
네 번째로 정상성은 유토피아다. 한 사람이 갖고 있는 다양한 정신적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고 통합되어 최적의 기능을 발휘하는 상태가 정상이다. 이는 객관적인 평가라기보다 매우 주관적인 자기 평가를 토대로 한다.
종합해보면,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상적인 특성들과 비정상적인 특성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공부를 매우 잘하는 것 역시 비정상의 부류에 속한다. 물론 한공주와 홍종두 역시 비정상적인 부분이 많다. 하지만 100% 비정상인 사람이겠는가. 정상적인 부분도 있고, 비정상적인 부분도 있을 뿐이다.
문제는 자신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비정상’으로 보는 시선이다. 그것은 논리적으로, 정신과학적으로도 틀린 판단이고 존중받을만한 의견이 아니다. 부분으로 전체를 판가름하지 말자.
+1) “장애인이네ㅋㅋ” 성숙한 사회와 미성숙한 사회를 구분하는 잣대로, 이 표현을 떠올린다. 며칠 전의 일이다. 페이스북에서 웃긴 사진을 보았는데, 위와 같은 댓글이 달렸다. 놀랍게도 이에 표현에 대해 문제를 제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좋아요만 몇 개 달려 있었다. 그들에게 장애는 조롱거리였을 것이다. 아니면 그냥 그 표현이 웃기다고 생각했던지, 별다른 생각이 없었을 것이다. 나 스스로도 생각 없이 이와 같은 표현들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경계해야겠다.
+2) 어떤 부족에서는 정신지체가 있는 사람들이 ‘신들림’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을 존중하고 그들의 의견을 따른다. 어떤 부분에 있어서, 그들보다 미개한 사회를 우리는 살고 있다.
A4)
“아이고 우리 아가씨 불쌍해서 어떡해!” 한상식의 아내는 성교중인 홍종두와 한공주를 목격하고 울부짖는다. 그러면서 옆집 아저씨를 불러 도움을 청한다. 홍종두는 경찰서에 끌려갔고, 한공주는 서럽게 울었다. 한상식의 아내는 그녀를 불쌍하게 여긴다.
한상식의 아내는 경찰서에서 한공주의 입 역할을 한다. 그녀의 논리대로라면, 홍종두는 장애가 있는 한공주를 강간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들은 사랑했고 처음으로 사랑을 나눈 것이다. 하지만 한공주는 장애 때문에 이 사실을 말할 수가 없다. 그녀가 말하는 언어는 한상식의 아내의 귀를 통해 다른 언어로 번역된다.
올바른 연민은 상대를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자신과 동등한 시선에서 상대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올바른 연민이라고 볼 수 없다. 그녀가 한공주를 존중했더라면 한공주의 말을 이해하려 노력했을 것이다. 옆집 아저씨를 부르기 이전에, 한공주가 남자들에게 몸을 보인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기에, 그녀는 올바른 연민을 하지 않았다. 애완견을 보는 시선으로, 개돼지를 보는 시선으로 그녀를 지켜보았기에 그런 행동을 취했다.
존중은 장애의 유무로, 나이의 높낮이로 변화되는 가치가 아니다.
A5)
상대방에 대한 이해 역시 존중에서 시작된다. 한공주를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은 그녀의 가족이 아니라 홍종두였다. 홍종두를 이해했던 사람 역시 한공주였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에서 이해는 시작되고, 존중할 줄 알아야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 어린 아이를 존중하는 부모는 “OO가 왜 그랬을까?”라고 어떤 일에 대해 자식에게 입장을 들어보고, “OO는 그 때 속상했겠다. 그치?”라는 식으로 말하며 감정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게 이해고 존중이다.
존중과 이해는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상대를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면 결코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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